비운의 챔피언 ‘폭주기관차’ 소니 리스튼 ⑬
비운의 챔피언 ‘폭주기관차’ 소니 리스튼 ⑬
  • 김갑상 기자
  • 승인 2018.12.1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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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 미국 라스베가스, 연말을 맞아 모든 사람들이 들떠 있었다. 비상근무 체제에서 순찰을 돌던 경찰관이 한 주택가에서 사망한지 일주일 정도 경과한 한 구의 시신을 발견한다. 경찰이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곤 깜짝 놀란다. 시신의 주인공은 전 세계헤비급 챔피언 ‘폭주기관차’ 소니 리스튼 이었다.


‘소니 리스튼’ 그는 비운의 복서이자 어둠의 챔피언이었다. 헤비급의 전설 프로이드 패터슨을 단 126초 만에 요절내고 맹주의 자리에 오른 뒤 캐시어스 클레이(무하마드 알리)에게 무너지고 재기의 몸부림을 치다 더 이상 기회를 잡지 못하고 쓸쓸하게 링을 떠난 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될 때 까지 그는 소설 같은 삶을 살다 갔다.

강력한 레프트를 날리는 리스튼
강력한 레프트를 날리는 리스튼

소니 리스튼의 아버지 투비 리스튼은 아칸소주(州) 리틀록 인근의 목화농장에서 목화를 따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투비 리스튼은 두 명의 부인에게서 25명의 자녀를 낳았다. 25명의 자식들 이름 외우기조차 벅찬데 교육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리스튼은 자신의 출생일마저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다.

어떤 근거인지는 모르지만 전 세계 모든 복서들의 기록을 관장하는 ‘복서 렉’에 따르면 소니 리스튼은 1930년 7월 22일 미국 아칸소주(州) 존슨 타운 쉽 태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처음 프로에 데뷔할 때 자격증을 따기 위해 만든 출생증명서에는 1932년생으로 되어 있으나 초창기 그의 경찰 체포 기록에는 1927년생, 또는 1928년생으로 되어 있다.

여하튼 리스튼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어머니를 따라 세인트루이스에 정착한 후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딱히 배운 것도 없는 그는 어둠의 세계에 쉽게 빨려 들어갔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에 비해 엄청난 거구에다 힘도 장사인 그는 어릴 적부터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렸다.

경찰 기록에 따르면 그가 처음 경찰에 체포된 것은 1949년 12월, 리스튼이 열아홉이 되던 해였다. 단돈 6달러를 빼앗은 혐의로 수배되고 계속되던 푼돈 강도짓에 체포되어 5년 형을 언도(言渡) 받는다.

수감되어 형을 살고 있던 중 그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평생의 은인 스티븐슨 신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신부의 권유에 따라 교도소에서 복싱에 입문하게 된다. 교도소 안에서 리스튼은 또 하나의 인연을 만난다. 그는 자동차 절도로 수감 된 세인트루이스 아마추어 복싱챔피언 샘 이브랜드였다.

당시 피카디리극장에서 영화와 함께 상영된 패터슨과의 세계타이틀매치(출처 조 타운슬리의 복싱매거진)
당시 피카디리극장에서 영화와 함께 상영된 패터슨과의 세계타이틀매치(출처 조 타운슬리의 복싱매거진)

이브랜드를 만난 리스튼은 물을 만난 고기 마냥 하루하루 복싱기술을 연마해 간다. 얼마 후 그는 레프트 잽 하나만으로 교도소 챔피언에 오른다. 리스튼의 파괴력은 훗날 그가 프로로 데뷔한 후 믿기 어렵겠지만 레프트 잽 하나만으로 수 차례에 걸쳐 KO로 장식한다.

스티븐슨 신부는 리스튼의 천부적인 복싱 재능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가석방을 위해 노력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프랭크 미첼이라는 잡지사 편집장과 함께 힘을 모아 결국 1952년 리스튼의 가석방을 실현시킨다.

하지만 미첼과의 인연은 두고두고 리스튼을 괴롭힌다. 미첼은 세인트루이스 마피아 존 비탈리와 친근한 사이로 결국 리스튼이 거물급 마피아 카르보와 인연을 맺는 단초를 제공한다. 가석방 된 후 1년 뒤, 1953년 9월 2일 리스튼은 돈 스미스를 1회에 날려 버리고 강호에 첫 발을 내딛는다.

데뷔 후 7연승을 달리다 1954년 9월 7일 마티 마르쉘에게 8회 판정패로 일격을 맞는다. 마르쉘은 그저 그런 3류 복서였으나 1회 버팅으로 턱에 금이 가는 바람에 시합 내내 고전하다 판정으로 패하고 만다. 마르쉘에게 패하기 전까지 리스튼은 미완의 보석이었으나 이 후 그는 공포의 대명사로 길을 개척한다.

1955년 3월 1일부터 1961년 12월 4일까지 6년 동안 26연승(19KO)을 쓸어 담는다. 리스튼의 철권아래 당대를 호령하던 66전의 백전노장 쿠바의 자존심 니노 발데스를 3회에, 백인의 강타자 마이크 드존을 6회, 클리브랜드 윌리암스를 2번의 승부에서 3회, 2회에 각각 날려 버린다.

리스튼의 공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51승(42KO) 3패 1무에 빛나는 조라 폴리마저 3회에 패대기친다. 이때부터 세인들은 그를 가리켜 멈출 줄 모르는 ‘폭주기관차’ 혹은 그의 험상궂은 인상에서 따 온 ‘검은 곰’이라 불렸다.

헤비급 역사상 가장 강력한 잽을 가졌다는 리스튼(출처 앤디훅 이종격투기)
헤비급 역사상 가장 강력한 잽을 가졌다는 리스튼(출처 앤디훅 이종격투기)

헤비급은 리스튼의 무자비함에 공포에 떤다. 그의 스타일은 상대에 따라 전술을 변경하는 따윈 없다. 오로지 철저하게 때려 부수는 것으로 일관한다. 당시 헤비급을 이끌고 있는 쌍두마차 플로이드 패터슨과 잉게마르 요한슨은 리스튼과의 대전을 노골적으로 회피한다. 그리고 영국의 자랑이라고 떠벌리는 헨리 쿠퍼는 리스튼을 피해 도망치기 바빴다.

리스튼의 칼날 빛이 예리한 섬광을 더해 갈수록 맹주의 자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마저 리스튼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흡사 흑 곰을 연상시키는 험상궂은 인상에다 어릴 적부터 교도소를 들락거린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데다가 결정적으로 마피아 연루설이 항상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당시 헤비급은 가장 인기 있는 체급이었다. 헤비급의 챔피언은 적어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고 꿈을 심어 줄 수 있는 자만이 그 자리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사회 통념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리스튼은 자격미달인 셈이었다.

게다가 당시 챔피언 패터슨은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착한 흑인’ 이었고 반대로 리스튼은 ‘나쁜 흑인’인 셈이었다. 아무튼 이래저래 리스튼에게는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리스튼에게 뜻하지 않는 반전이 생긴다.

1961년 12월 4일 챔피언 패터슨과 리스튼은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나란히 시합을 한다. 패터슨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톰 맥닐리를 4회에 제압하고 리스튼은 필라델피아에서 독일 헤비급 챔피언 앨버트 웨스트팔을 1회에 때려눕힌다. 특히 리스튼은 웨스트팔을 레프트 잽 한방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괴력을 보인다.

공교롭게도 당시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그 두 경기를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패터슨이 헤비급 역사상 최초로 스웨덴의 천재 복서 잉게마르 요한슨을 누르고 왕좌로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를 백악관으로 초대한다.

비운의 복서 소니 리스튼(출처 Wikipedia)
비운의 복서 소니 리스튼(출처 Wikipedia)

당시 프로복싱은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실질적인 주도는 전미(全美) 복싱협회에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고 있었다. WBA, WBC 양대 복싱기구는 1962년, 1963년에 각각 창립되었다. 이전에는 세계챔피언이라 함은 사실상 전미 챔피언인 셈이었다.

프로이드 패터슨은 초대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다음 도전 상대를 패터슨에게 물어 보자마자 패터슨은 주저 없이 ‘리스튼’이라고 답한다. 패터슨은 대통령의 의중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 케네디 대통령은 “맞아. 당신은 그 친구를 꼭 꺾어야 해” 라고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게 엉뚱한 곳에서 리스튼에게 기회가 오고 있었다. 1962년 9월 25일 시카고 코미스키 파크. WBA세계 헤비급타이틀매치. 챔피언 프로이드 패터슨이 40전 38승(27KO) 2패의 전적 그리고 도전자 소니 리스튼 35전 34승(21KO) 1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나쁜 흑인’ 소니 리스튼과 ‘착한 흑인’ 프로이드 패터슨과의 시합은 공 소리와 동시 결과는 너무나 허무하게 단 126초 만에 ‘나쁜 흑인’ 소니 리스튼의 승리였다. 역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

1963년 7월 22일 패터슨은 이번에는 입장이 바뀌어 도전자로서 ‘절치부심’ 비수를 품에 안고 다시 한 번 리스튼에게 대적하지만 결과는 전 시합과 동일하게 1회에 나뒹굴고 만다. 한때는 전 세계를 호령하던 패터슨이었지만 그는 리스튼에게는 너무나 연약했다.

평생을 어둠의 세계에서 살아 온 리스튼에게 원대한 꿈이 있었다. 뼈아픈 과거를 청산하고 세계챔피언이 되어 흑인은 물론 백인사회에서도 존경을 받으며 살고 싶었다. 매스컴을 통해 수 없이 철없는 과거에 대해 용서를 구했지만 당시 미국사회는 그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알리에게 무너지고 있는 리스튼
알리에게 무너지고 있는 리스튼

리스튼이 챔피언 벨트를 품에 앉고 금의환향하지만 공항에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이라곤 몇몇 기자가 전부였다. ‘훌륭한 시민’ ‘존경 받는 챔피언’을 꿈꾸었지만 리스튼에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세인들에겐 그는 여전히 흉악한 범죄자, 도박꾼 그리고 마피아의 하수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세인들과 달리 강호인들은 그를 잭 뎀프시, 조 루이스, 록키 마르시아노와 같은 위대한 맹주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었다. 사회적 편견 속에서도 리스튼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2차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대는 애송이 캐시어스 클레이(무하마드 알리)였다.

클레이는 1963년 6월 18일 영국 웸블리 구장에서 사우스포 강타자 헨리 쿠퍼를 5회에 작살내고 맹주 탈환을 위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1964년 2월 25일 마이애미 비치. 클레이는 19전 19승(15KO)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도박사들은 9:1로 리스튼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지만 도전자 클레이에게 7회에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다. 훗날 이 시합을 두고 마피아가 개입한 승부조작이라고 두고두고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세인들의 입방아에 클레이가 분노한다. 자신의 실력으로 쟁취한 왕좌가 조작에 의한 승리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클레이가 리스튼과의 재대결을 일방적으로 발표한다. 1965년 5월 25일 재대결에 나선 리스튼은 1회를 버티지 못하고 캔버스에 나뒹굴고 만다. 그렇게 리스튼의 짧지만 강렬했던 왕조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후 떠벌이 클레이에 의해 리스튼은 ‘폭주기관차’에서 ‘늙은 곰’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 시합 후 클레이는 WBA의 권고를 무시하고 리스튼과의 시합을 일방적으로 강행한 대가로 타이틀을 박탈당한다.

그렇게 클레이에게 허무하게 두 번을 패하고 난 뒤 “챔피언 리스튼이 마피아에게 매수되어 고의로 패했으며 그리고 약물에 중독됐다” 는 소문이 알파만파로 퍼져 나가자 결국 미국하원이 진상조사 위원회까지 구성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1차전에 리스튼이 6회가 끝난 후 왼쪽팔의 통증을 호소하며 경기를 포기한 후 병원 검사 결과 왼쪽 어깨뼈에 금이 간 사실로 나타났으며 이것이 경기 중 입은 상처인지 아니면 경기 전에 입은 상처인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정신적 신체적으론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리스튼은 다시 일어선다. 1966년 7월부터 1969년 9월까지 그는 파죽의 14연승(12KO)을 달린다. 그리고 기관차는 아직 녹 쓸지 않음을 세인들에게 증명한다.

그러나 세인들은 싸늘했다. 그에게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 후 북미챔피언에 도전하지만 실패하고 영화 ‘록키’의 실제 모델 척 웨프너와의 시합을 마지막으로 사각의 캔버스를 뒤로 하고 쓸쓸히 사라진다.

리스튼의 사망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다. 당시 수사관은 현장에서 헤로인과 마리화나 등 약물이 발견되고 그의 팔에는 주사 바늘이 있는 걸로 보아 약물 과다로 사망원인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리스튼의 측근들은 “마약류가 의사의 처방에 의한 것이라도 리스튼이 이를 거부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소니 리스튼’ 그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수많은 미스터리를 간직한 사나이로 기억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전설 ‘어둠속의 철권’ 소니 리스튼, 세인들의 천대와 멸시 속에 어두운 과거를 떨쳐 버리려고 몸부림치며 맹주의 자리까지 오르지만 마지막까지 마피아 연루설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38세, 아직 살아 갈 날이 창창하건만 지금까지 살아 온 자신의 삶처럼 그렇게 고독하게 사라져 갔다. 소니 리스튼 생애 통산 전적 54전 50승(39KO) 4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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