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브레이크(Jaw Breaker 턱 분쇄기)’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 ⑧
‘조 브레이크(Jaw Breaker 턱 분쇄기)’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 ⑧
  • 김갑상 기자
  • 승인 2018.04.0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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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태조 이성계가 삼봉(정도전)이라는 인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 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정치, 경제,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어떤 참모 혹은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대성 할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이 된다. 특히 스포츠에선 자신의 천재성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이 감독이고 트레이너이다.


웰터급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 WBA 웰터급세계챔피언 멕시코의 ‘조 브레이커(턱 분쇄기)’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가 위의 문장에 딱 들어맞는 그런 선수다. 쿠에바스는 1957년 12월 27일 멕시코에서 태어나 1970년 초 아마추어 데뷔, 2년 후 1971년 11월 13일 14세의 어린 나이로 프로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다.

전성기의 쿠에바스
전성기의 쿠에바스

길쭉한 키에 깡마른 몸매, 멕시코 특유의 고집스레 생긴 꾹 다문 사각턱 그리고 시골 공무원을 연상케 하는 2대8 가르마, 그는 어린 나이에 데뷔한 탓인지 무리한 롱 훅만 남발하다 알프레도 카스트로에게 2회 KO패로 시작부터 초를 친다.

쿠에바스는 기본기도 부족했고 복싱을 스포츠라기보다 동네 싸움처럼 생각하고 마구잡이식으로 경기를 해왔다. 게다가 공격적인 성향 때문에 이판사판식으로 펀치를 휘두르다 상대에게 적중되지 않으면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혀 제풀에 쓰러지곤 하였다.

들판의 잡초처럼 거센 비바람과 맞서 싸워가며 앞만 보고 전진하는 공포와 두려움이 없는 앳된 소년이었지만 펀치의 파괴력 하나만은 당대 최고였다. 야생마와도 같은 이 소년을 눈여겨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멕시코의 전설적인 명 트레이너 루페 산체스였다.

쿠에바스가 루페 산체스를 만나기 전까지 전적은 12전 7승(7KO) 5패. 전적 그대로 모 아니면 도, 죽기 아니면 살기 그 자체였다.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은 명 트레이너 산체스를 만나 하나 둘씩 허물을 벗고 명작으로 변해 간다.

로베르트 두란과의 대전
로베르트 두란과의 대전

1974년 일취월장한 쿠에바스는 네 차례의 시합에서 상대선수 모두를 초반부터 윽박질러 캔버스 바닥에 패대기친다. 경기 결과 그대로 ‘초전박살’이었다.

루페 산체스를 만난 그 다음해 쿠에바스는 세계 랭커인 루벤 바스케스, 카를로스 오브레곤을 차례로 판정으로 제압한다. 여기에서 주목 할 것은 이제 더 이상 그가 펀치력만 믿고 시합을 임하는 것이 아니라 테크닉과 체력 면에서도 많이 향상되어 더 이상 초보복서가 아님을 증명하였다.

쿠에바스는 1975년 호세 파라시도스를 KO로 제압하고 멕시코 챔피언 등극한다. 이어 라파엘 피아몬테를 1회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레프트 훅 단 한 번의 주먹질로 링 바닥에 내 동댕이치며 챔피언 왕좌에 도전자격이 부여되는 꿈에 그리던 세계랭킹에 진입한다.

약관(弱冠)도 채 되지 않은 쿠에바스에게 드디어 챔피언 도전의 길이 열린다. 상대는 WBA웰터급 세계챔피언 앙헬 에스파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초를 치고 만다. 챔피언 도전 전초전에서 기교파 앤디 프라이스와의 대전에서 시합 내내 쫒아 다니며 헛스윙만 남발하다 판정으로 패하고 만다.

이젠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고 절망에 빠져 있는 그에게 그를 만만하게 본 챔피언 에스파다는 전초전 전에 이미 계약된 것이니 전초전 결과와 관계없이 도전권은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챔피언 에스파다의 이 같은 우매한 결정은 절대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만 것이었다.

앙헬 에스파다를 침몰 시키며 지존에 오른다
앙헬 에스파다를 침몰 시키며 지존에 오른다

1976년 7월 17일 WBA 세계웰터급 세계타이틀 매치, 쿠에바스의 홈 링인 메히카리 체육관.

47전 36승(21KO) 4무 7패 전적의 노련하고 기교파인 챔피언 에스파다는 당시 21전 15승(13KO) 6패의 이제 만 18살의 풋내기에다가 길지 않은 프로선수 경력에 6패를 안고 있고 전초전에서 경기 내내 상대편 꽁지를 쫒아 다니며 헛손질만 남발하다 패한 쿠에바스를 보고 편안하게 원정길에 올랐다.

사실 챔피언 에스파다 머릿속엔 다음 도전자인 일본선수 쓰지모도 쇼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노련미의 챔피언 에스파다와 약관도 채 되지 않은 도전자 쿠에바스, 드디어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린다.

1회전은 챔피언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를 도전자에게 가르친다. 빠른 푸드웍, 날카로운 잽에 이은 송곳 같은 스트레이트, 간혹 올려치는 짧은 어퍼컷 하지만 도전자 쿠에바스는 한 마리 황소처럼 앞만 보고 뚜벅뚜벅 전진만을 반복한다.

2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쿠에바스의 장거리 훅이 챔피언의 관자놀이에 명중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챔피언의 귓가에 주심의 카운터가 들린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어선 챔피언 하지만 그는 일어선 것을 후회하는데 채 30초도 걸리지 않는다.

헌즈에게 타이틀을 상실하다
헌즈에게 타이틀을 상실하다

상처 입은 먹잇감을 본 사나운 도전자는 날이 선 시퍼런 양 도끼를 인정사정없이 챔피언의 안면과 몸통을 난사한다. 2회 2분 26초 모든 것이 끝이었다. 연습시합 정도로만 생각하고 왔던 챔피언 에스파다는 초죽음이 되어서야 링을 떠날 수 있었다.

사실 챔피언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쿠에바스가 롱 훅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각도에서 날아오는 라이트가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조금만 연구해도 알 수 있는 것을 그는 놓친 것이다. 맹수는 한 마리의 토끼사냥도 최선을 다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잊은 것이다.

어쨌든 쿠에바스는 웰터급 역사상 최연소인 만 열여덟 살에 지존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위대한 제왕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의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이때부터 맹주 쿠에바스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을 구축한다.

그리고 공포의 대명사 조 브레이커(턱 분쇄기) 전설의 시작과 동시 향후 4년 간 피의 철권통치가 시작된다. 첫 방어전의 상대는 일본의 기교파 왼손잡이 쓰지모도 쇼지. 도전자는 챔피언의 장거리 곡사포에 세 차례나 링 바닥 엉금엉금 기다가 6회에 큰대자로 드러눕고 만다.

80전의 노장 미구엘 캄파니오와 클라이드 그레이를 나란히 2회에 링 바닥에 패대기치고 가볍게 3차 방어까지를 마무리 한다. 4차 방어전은 상대를 너무 가볍게 본 자신을 자책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아 온 전 챔피언 앙헬 에스파다와의 리턴 매치.

그러나 에스파다는 전(前) 시합보다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10회까지 빠른 발로 잘 버틴 에스파다 였지만 11회에 일이 터지고 만다. 시작을 알리는 공과 동시 에스파다를 로프에 몬 쿠에바스의 양 훅 5방이 도전자의 턱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려 꽂힌다.

11회 쿠에바스의 KO승. 이 시합에서 에스파다는 턱뼈가 함몰되는 치명상을 입는다. 챔피언 쿠에바스의 공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다음 도전자 헤롤드 웨스턴의 턱마저 날려 버린다.

이때부터 쿠에바스는 강호인들에게 공포의 대명사 ‘조 브레이커(턱 분쇄기)’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이후 쿠에바스는 스코트 클라크, 빌리 바커스, 피트 란자니를 닭 모가지 비틀 듯 차례로 2회안에 박살을 내고 8연속 KO로 8차 방어를 마무리 한다.

그 다음해 랜디 쉴즈의 빠른 발에 고전하다 힘겹게 15회 판정으로 9차 방어를 마무리한 쿠에바스는 또 다시 앙헬 에스파다 그리고 헤롤드 볼보레히트를 넉 아웃시키고 11차 방어까지 완수한다.

아무 거칠 것 없는 22세의 젊은 맹주 쿠에바스에게도 어둠이 짙어 오고 있었다. 그것은 내부로 부터의 불길함이 아니라 외세로부터 불어오는 검은 바람이었다.

쿠에바스의 12차 방어전 상대는 디트로이트의 저격수, 검은 코브라 토마스 헌즈였다. 그가 4년간의 철권통치에 전념하고 있을 때 검은 코브라는 정글 속에 숨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이었다.

1980년 8월 2일 디트로이트 조 루이스 아리나 체육관 WBA 웰터급 세계타이틀 매치.

당시 챔피언 쿠에바스는 22세 27승(24KO) 6패, 도전자 헌즈는 스물한 살에 28전승(26KO)의 전적이었다. 쿠에바스와 헌즈의 대결은 괴력끼리의 맞장이었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시합이었다.

1회, 기본기가 충실한 헌즈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잽에 이은 스트레이트로 쿠에바스를 괴롭힌다. 가드가 허술한 쿠에바스는 헌즈의 송곳 같은 잽을 고스란히 허용하면서 예고타 없이 기습공격을 감행해 보지만 헌즈는 좀처럼 유효거리를 주지 않는다.

2회 초반 쿠에바스가 벼락치기 공격으로 주도권을 잡아 보려 했지만 기본기가 안정된 헌즈는 가볍게 공격을 무마시키면서 왼손 잽과 라이트를 실세 없이 쏟아 붓고 있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대로 쿠에바스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라운드 후반 헌즈의 잽에 이은 186센티의 큰 키에서 나온 라이트 스트레이트 직사포가 쿠에바스의 턱에 통렬하게 꽂힌다. 시합의 끝을 보겠다는 결연함이 확연하게 드러난 회심의 한방이었다.

현재의 쿠에바스
현재의 쿠에바스

이어진 라이트 스트레이트 2방에 쿠에바스는 길게 드러누워 천정을 바라보는 시선엔 이미 동공이 풀린 상태였다. 주심이 카운트를 할 필요가 없다는 듯 그대로 경기를 중단시킨다. 그렇게 위대한 쿠에바스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헌즈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헌즈와의 패배는 슈거레이 레너드와의 빅 매치도 날아가고 우리나라의 기대주 황충재와의 시합도 무산되어 버린다. 하지만 너무나 젊은 그였기에 찬란한 영광을 위해 몸부림 쳐 보지만 로베르토 두란에게 4회 TKO패를 당하고 한국의 황준석에게도 한차례 다운을 허용하고 판정패를 당한다.

헌즈에게 지존의 자리를 강탈당한 후 10여 년간 다시 한 번 천하재패를 위해 사각의 캔버스 위에 오르지만 지다 이기기를 반복한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 하늘은 더 이상 쿠에바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1989년 9월 25일 루페 아키노와의 경기를 끝으로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홀연히 사각의 정글을 떠나간다.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지존에 올라 4년 간 날이 선 양 도끼를 휘두르며 한 시대를 풍미한 쿠에바스, 아직도 팬들은 일발필살(一發必殺)의 가공할 레프트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훗날 쿠에바스는 멕시코의 작은 도시에서 정치에 입문, 정치인 쿠에바스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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