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의 ‘아마데우스’ 살바도르 산체스 ③
링 위의 ‘아마데우스’ 살바도르 산체스 ③
  • 김갑상 기자
  • 승인 2017.11.2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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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8월 12일, 이른 새벽 적막을 깨고 멕시코로부터 전 세계 외신을 타고 한통의 비보(悲報)가 날아온다. ‘WBC 세계 페더급 챔피언 살바도르 산체스 교통사고로 사망.’ 전 세계 복싱팬 그리고 멕시코 국민은 충격과 슬픔에 빠진다.


‘살바도르 산체스’ 그가 누구인가, 훤칠한 키에 흡사 다비드 상을 연상케 하는 매끈한 몸매와 수려한 외모, 깔끔한 매너에 성실함까지 게다가 현란한 테크닉에 파워까지 겸비한 ‘완벽’ 그 자체였다.

KO머신 고메즈를 잠재우는 산체스.
KO머신 고메즈를 잠재우는 산체스.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까지를 프로복싱 역사에선 경량급의 황금시대로 일컬어지고 있다. 당시 경량급엔 전설적인 자객들이 즐비하였다.

전무한 17차례 연속 KO 방어 기록을 세운 33전 32승(32KO) 1무승부의 푸에르토리코의 영웅 ‘바주카포’ 윌프레도 고메즈, 깡마른 몸매에 히틀러 같은 콧수염 45전 44승(43KO) 1무승부의 ‘공포의 파괴자’ 카를로스 자라테.

160㎝도 미치지 못하는 단신에 어린애 같은 해맑은 얼굴을 한 반면 무시무시한 해머 주먹을 자랑하는 27전승(27KO)의 ‘작은 포식자’ 알폰소 자모라, 레프트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말을 실천한 19차 방어의 보유자 ‘검은 여우’ 에우제비오 페드로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자객들이 존재한 그 속에 살바도르 산체스 그가 있었다.

산체스는 오로지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는 사각의 정글에서 ‘영원한 아마데우스’ 링 위의 연주자였다. 살바도르 산체스는 1958년 2월 3일 복싱 강국 멕시코 남부 산티아고에서 아버지가 건축업을 하는 한 중류가정에서 11남매 중 하나로 태어났다.

대니 로페즈에게 강력한 라이트를 날리는 산체스.
대니 로페즈에게 강력한 라이트를 날리는 산체스.

그는 어릴 적 허약한 체질이어서 동네 불량배에 맞고 다니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를 계기로 산체스는 14살부터 복싱에 입문하게 된다.

3년간 아마추어 선수생활을 거쳐 1975년 5월 알 가르덴노를 초반에 박살내고 프로로 데뷔한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열여섯 살 이였다. 데뷔 후 산체스는 거칠 것이 없었다. 1977년 5월까지 그는 파죽의 18연승(17KO)을 이어 갔다.

1977년 9월 9일, 산체스는 공석인 멕시코 밴텀급 타이틀을 놓고 안토니오 베체라와 벌인 시합에서 텃세 판정으로 그의 생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배의 아픔을 경험한다. 하지만 산체스는 그 날의 시합을 거울삼아 더욱더 매진한다. 2차례의 재기 전에서 승리한 후 페더급으로 한 체급을 올린다.

페더급으로 올린 후 첫 상대는 후안 에스코바, 산체스의 미국 무대 데뷔전이기도 하였다. 에스코바는 10전(8승 2패)의 무명복서였다. 그러나 산체스는 중반까지 다운을 두 차례 당하는 등 고전하다 후반에 밀어 붙여 무승부를 이끌어낸다. 이 졸전을 두고 그는 고개를 떨구며 자책한다.

아주마 넬슨과의 사투.
아주마 넬슨과의 사투.

두 번의 시련을 이겨낸 산체스는 이 후 기량이 급성장 한다. 대니 로페즈에게 도전하기 전까지 파죽의 13연승을 달린다. 그중 10번의 KO승이 포함되어 있다. 산체스가 21살 되던 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세계 타이틀 도전자 자격이 주어진다.

상대는 ‘리틀 레드’ 혹은 ‘피를 부르는 사나이’ WBC 페더급 세계챔피언 미국의 대니 로페즈, 그는 ‘멕시코의 괴물’ 루벤 올리바레즈를 꺾고 챔피언에 오른 데이빗 코테이를 적지에서 잡고 왕좌에 오른 후 9차례의 방어전 중 8번을 KO로 제압한 페더급 부동의 제왕이었다.

또한 단순한 공격 패턴 때문에 초반에 고전하지만 묵묵히 앞만 보고 전진하는 파이팅으로 곧잘 역전승을 이끌어 내 팬들을 사로잡는 나름 인기 있는 복서였다. 당시 로페즈는 42승(39KO) 3패의 전적을 보유한 강타자였다.

도박사들은 챔피언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으며 당시 복싱전문지 ‘링’ 지에서 도대체 산체스가 누구냐며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산체스가 세계 타이틀전을 처음 접하는 선수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 준다.

산체스는 도박사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챔피언 로페즈를 요리하기 시작한다. 빠른 발을 이용, 쉴 새 없이 들락거리며 로페즈에게 유효거리를 주지 않는 한편 자로 잰듯한 펀치는 로페즈의 안면에 정확하게 내려 꽂힌다.

산체스의 장례행렬.
산체스의 장례행렬.

라운드를 거듭 할수록 다양한 각도에서 쉴 새 없이 뻗어 나오는 산체스의 주먹은 면도칼이 되어 챔피언을 괴롭힌다. 이른바 산체스의 절세비공 ‘산체스 존’이 천하에 공개 되는 순간이었다.

10회, 완전히 자신감을 얻는 21살의 젊은 멕시칸은 원투와 어퍼컷 그리고 좌우 콤비네이션으로 챔피언을 철저히 유린한다. 11회부터 레프리가 13회 시합을 중단 할 때까지 시합이라고 하기보다 차라리 ‘매타작’에 가까웠다.

특유의 뚝심으로 노심초사 역전을 노리던 챔피언이 13회 초반 산체스의 통렬한 라이트 스트레이트 한방을 맞고 몸에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자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킨다. 산체스의 13회 TKO승이었다. 운집한 세인들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 현실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산체스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시합 전, 전설의 트레이너 안젤로 던디(무하마드 알리와 슈거레이 레너드의 트레이너)가 로페즈에게 산체스의 잠재능력을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충고했지만 로페즈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대니 로페즈와의 압도적인 승리는 이제 ‘살바도르 산체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전 세계에 알린 선언식이었다.

지존의 자리에 오른 2개월 후 산체스는 루벤 카스티요를 맞아 판정으로 1차 방어에 성공 한 후 2차 방어전에서 또 다시 대니 로페즈와 대전하지만 13회가 14회로 바뀌었을 뿐 산체스에겐 그는 더 이상 적수가 아니었다.

네 차례의 방어전을 더 치른 후 산체스는 다가올 6차 방어전에 전력을 쏟는다. 상대는 한 체급 아래의 ‘바주카포’ 푸에르토리코의 영웅 윌프레도 고메즈였다.

산체스VS고메즈 황금매치 포스터.
산체스VS고메즈 황금매치 포스터.

당시 고메즈는 대한민국의 염동균에게서 타이틀을 탈취한 후 32전(32KO) 1무의 전적으로 13차례의 방어전 중 도전자 그 누구도 마지막 라운드의 공 소리를 듣지 못한 당대 최고의 파이터였다. 그의 칼 날 아래 희생된 13명중 멕시코가 자랑하는 ‘공포의 파괴자’ 카를로스 자라테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의 체급에서 상대를 찾지 못한 고메즈가 더 넓은 세상을 항해하기 위한 야망의 재물로 고른 산체스가 그에게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1981년 미국 라스베가스, WBC 페더급 세계타이틀 매치. 당시 경량급 선수로서는 상상 할 수 없는, 두 선수 모두 각각 300만 달러의 대전료를 받았다.

1회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리자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산체스가 아웃복싱을 하지 않고 고메즈에게 접근전을 유도한다. 도전자는 울고 싶은 놈 뺨 때려준 챔피언의 호의에 지체 없이 산체스를 코너에 몰아넣고 펀치를 날리려는 순간 산체스의 강력한 레프트 훅이 고메즈의 턱에 적중한다.

고메즈가 프로로 전향한 후 우리나라의 염동균에게 첫 다운을 당한 후 생애 두 번째 다운이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일어선 고메즈에게 산체스는 무차별하게 주먹을 난사한다. 종료공이 고메즈에게는 신의 축복처럼 느껴질 정도로 난타당한 1회였다.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고메즈는 퉁퉁 부어 오른 눈 때문에 조급함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산체스는 쉴 새 없이 드나듦을 반복한다. 운명의 8회, 앞선 7회에서 고메즈의 분전에 잠시 주춤했던 산체스가 라운드 초반부터 고메즈를 몰아붙인다.

영원한 페더급의 전사 산체스.
영원한 페더급의 전사 산체스.

이에 질세라 도전자도 격렬하게 저항한다. 양자는 청코너에서 쉴 세 없이 주먹을 교환하다 순간 산체스의 그림 같은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고메즈의 턱에 적중하자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쓰려지는 고메즈를 향해 3방의 주먹이 명중한다.

주심은 다시 일어 선 고메즈의 동공을 확인 한 후 시합재개 불가를 선언한다. 철옹성 같았던 고메즈의 침몰이었다. 산체스에게 패한 고메즈는 다(多)체급 석권 야망을 수 년 후로 미뤄야 했다. 이 경기는 헌즈와 레너드의 시합과 함께 ‘1981년 최고의 경기’에 선정되었고 또한 산체스와 레너드는 그 해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다.

산체스는 7, 8차 방어전을 무난하게 마무리 한 후 9차 방어전을 치르게 된다. 상대는 세계랭킹 10위, 13전승(10KO)에 빛나는 ‘가나의 신성(新星)’ 아주마 넬슨, 상위 랭크들이 산체스와의 대전을 거부하자 넬슨이 지명 도전자로 나선 것이다.

1982년 7월 21일, ‘복싱의 성지 뉴욕 메디슨 스궤어 가든’ 산체스의 9차 방어전 시작공이 울린다. 산체스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지만 가나에서 온 저돌적인 이 인파이터는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끈질긴 도전자는 14회까지 두 번의 다운과 자신의 코너조차 찾아 갈 수 없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챔피언을 괴롭힌다.

운집한 관중은 도전자의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지만 15회 시작과 동시 터진 산체스의 카운터펀치에 장렬하게 산화해 갔다. 훗날 넬슨은 페더급 ,슈퍼 페더급 2체급을 석권하고 긴 세월 절대군주로서 위명을 떨친다.

슬프게도 이 시합은 살바도르 산체스가 이승에서 한 마지막 경기가 된다.

천재 복서를 향한 신의 질투였는지 9차 방어전을 치른 20여 일이 지난 1982년 8월 12일, 라스베가스 외곽 도로에서 그의 애마 포르쉐를 몰고 주행하다 중앙선을 넘어 질주하던 트럭과 충돌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그때 그의 나이 복서로선 한창인 스물 셋이었다.

프로복싱의 왕국 멕시코에는 불멸의 신화를 남긴 전사들이 즐비하지만 산체스만큼 전 세계의 복싱팬과 멕시코 국민에게 사랑을 받았던 선수는 드물었다.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스타이면서도 항상 겸손할 줄 알고 그런 그의 성품처럼 시합 전 철저한 준비와 진지한 대전자세로 결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팬들은 그를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애칭을 따 영원한 ‘링 위의 아마데우스’ ‘연주자 살바도르 산체스’라 불렸다. 그의 사망으로 에우제비오 페드로샤와의 페더급 천하통일 시합과 알렉시스 아르게요의 빅 매치도 무산 되어 팬들은 더욱 더 아쉬워하고 그를 그리워한다.

산체스가 사망한지 9년 후 그는 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고 99년 링 지가 선정한 페더급 역대 최고의 선수 2위에 그 이름을 올려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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