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거제 700리’ 김한표의 민생탐방기 두 번째 이야기
‘걸어서 거제 700리’ 김한표의 민생탐방기 두 번째 이야기
  • 진평철 기자
  • 승인 2021.09.2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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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째

칠천교에서 나와 실전 마을 입구에서 출반하는 4일차 민생탐방이다. 오늘은 하청 실전을 거쳐 장목 매동, 장서, 장북을 거쳐 송진포, 황포, 구영으로 가는 코스다. 해저케이블 설치 업체 KT서브머린 입구를 지나 고개를 넘으니 장목항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매립된 해수부 부지를 장목면민이 사용할 수 있는 운동장으로 용도 변경하는 일은 어디쯤 와 있을까.

장목항의 국가어항 승격은 현역 의원 시절 예결위원으로 있을 때 2020년부터 국비 약 400억 정도 소요되는 사업을 위원장에게 확실히 얘기해서 국가어항으로 넣는 작업을 했었다. 국가어항은 총량제로 묶여 있어서 어느 한곳이 빠져야 끼워 넣을 수 있는 사업이라 꽤 신경전을 벌였었다. 장서 마을 중간쯤 GS 편의점이 눈에 띄어 잠시 들어갔는데, 주인인 듯한 젊은이의 표정이 침울했다.

아이스크림과 물 2병을 사고 나서 “분위기가 좀 그런데, 무슨 사정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며칠 뒤 편의점 문을 닫는다고 했다. 가게를 접는다는 그는 36세의 젊은이였다. 태생은 옥포지만 부모님은 외포에 살고 계신다고 했다. 16살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편의점을 하는 10년 동안 받은 차별과 설움을 절절히 내뱉는 그의 절규는, 듣고 있던 내 마음까지 무척 아프게 했다. 36세면 우리 둘째 딸과 같은 나인데.

통영으로 가서 통발 어업을 할 작정이란다. 거제는 너무 정이 없고, 갑질도 심한 곳이라고 머리를 저었다. 그러면서 부디 거제를 잘 다듬어 젊은이들이 떠나지 않고 오래 정착할 수 있는 동네로 만들어 달라고 진정으로 부탁했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통발 어업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란다. 배를 사서 어촌계에 가입하려니 가입비가 너무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특히 젊은이들의 귀농 귀어 정책을 믿고 들어왔다가 대부분 정착을 못하고 실망하며 떠나기 다반사라고 푸념했다.

젊은이의 얘기를 한참 듣다 보니 가슴 찡한 부분이 많았다. 우리 청년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런 참신한 생각들이 활성화되고 신바람 나는 일자리를 만들어내는데 힘이 되는 시정이 되었으면 한다. 젊은이들이 살고자 하는 거제, 그런 거제를 만드는 것이 곧 경제 활성화 대책이 아닐까. 아침 조간신문 1면 우측에 101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라는 칼럼을 읽었는데, 나는 이 부분에서 ‘청년의 꿈이 무너지고 있다’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장서 마을에서 장목 파출소로 넘어오는 곡각 지점은 옛날부터 굉장히 위험한 도로로 인식돼 있었는데,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장목 농협 앞에서 지인을 만나 간단한 점심을 먹은 뒤 해양플랜트 산업지원센터 옆을 지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났다. 산업지원센터 소재지를 두고 하동 갈사만과 거제가 전쟁 같은 쟁탈전을 벌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거제에 유치해 놨는데, 지금 얼마나 조선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지, 운영은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송진포 마을 입구에 설치된 벤치는 운치도 있고 편리하기도 했다. 드비치CC 입구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이 심하다 보니 세 번을 쉬어가며 올랐다. 황포 공원 묘역 앞을 지나면서 공용 묘지 현대화 사업 필요성에 대해 동행한 일행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변화하는 장례문화와 묘지 관리, 화장장 설치 등 오래전부터 생각한 일이지만 거제시립화장장 설치는 당면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거제에 화장장이 없다 보니 통영이나 진주, 창원까지 시신을 안고 가야 한다. 거제에서 태어나 거제에서 살다가 죽어서 타향을 떠돈다는 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역대 시장들이 거제 화장장 건립을 마음먹었지만, 우리 동네는 안된다는 민원 탓에 강력한 추진을 하지 못하고 미루다 지금까지 온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이제는 욕을 먹더라도 거제인의 자존감을 되찾는 차원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인센티브를 매개로 한 공모사업을 통해 전국 최고 시설의 화장장 건립을 추진해야 한다.

황포를 지나 구영 마을에 도착하니 동네 방송에서 선물을 나눠준다고 마을 회관으로 모이라고 한다. 호기심에 마을 회관으로 갔다. 반가운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한동안 소식이 없어 어디 갔었나 했는데, 이제 나타났다”라며 환호성으로 응원하다. 며칠째 쌓인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다. 고향이 이래서 좋은가 보다.

구영해수욕장이 오늘의 도착 장소였는데, 상유 고개가 가팔라 내일을 위해 고개를 오르기로 했다. 상유 고개까지는 30분이 넘게 걸렸다. 고개에선 거가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거제시민에겐 꿈의 다리였지만 통행료가 비싼 게 흠이다. 통행료 인하를 위해 법안까지 제출하는 등 발로 뛴 날들도 많았다. 그래서 얻은 게 화물자동차 5000원 내린 게 전부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승용차까지 종지부를 지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거가대교 옆으로 돼지 섬 '저도' 가 보인다. 몇 해 전 관리권이 거제시로 넘어왔다. 지금은 일부 개방에 그치고 있지만 전면 개방을 위해 꾸준히 협의해 나가야 할 일이다. '저도' 로 들어가는 유람선들은 코로나로 인해 거의 운항을 못하고 있다. 하루빨리 운항이 재개돼 거제 관광의 활기를 되찾아야 하는데…. 마음이 무겁다.

상유 고개 표지판 앞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했다. 만보기에 찍힌 숫자는 2만 3022보다. 거리는 16㎞ 115m. 오늘도 40리쯤을 걸었다. (2021.9.13.)

∎5일째

새벽 비 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비가 좀 그치기를 기다리다 20분이 늦었다. 상유 고개에서 내려오는 길은 비 때문에 미끄러워 위험했다. 상유(上柳)는 웃버드래라 부른다. 타계하신 큰 고모님이 사셨던 곳이라 항시 정이 가는 동네다. 사람이 없는 바닷가 길을 따라 아랫버드래 쪽으로 내려오니 경상대 수련원이 관리가 안 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같이 협력해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바닷가 길 지천에 쓰레기가 늘려있다. 스티로폼이나 폐어구 등이 대부분이다. 청정 거제 이미지와도 너무 다른 모습들이다. 청정바다 가꾸기 운동은 이래서 꼭 필요하다. 태풍에 밀려오고 버려진 쓰레기는 반드시 치워야 한다. 유호전망대에서 거가대교 풍광과 전망대 아래 절벽에 널브러진 쓰레기는 대청소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방증한다.

농소 몽돌해수욕장은 거제에서 가장 긴 몽돌해변이다. 길이가 무려 2㎞로 해변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어릴 적 친구들과 같이 이곳에서 놀던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농소 임호를 지나는데 벨버디어 한화리조트가 위용을 자랑한다. 의원 재임 시절 개장된 건물이다. 이런 천혜의 풍광 지역엔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 간곡에 있는 한 음식점에 들렀다. 중년의 주인이 나를 알아보고 이내 열변을 토했다. 우리 시에도 통영 강구항 어시장이나 부산 자갈치 같은 어시장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나도 깊이 공감해온 일이다.

면류관 관자를 쓰는 내 고향 관포(冠浦)를 지나 두모로 넘어오는 길을 걷다 보니 시멘트로 만든 길바닥이 여기저기 갈라져 흉해 보였다. 두모(頭毛) 마을에는 LPG 소형 저장 탱크가 있다. 초선 의원 시절, 가스공사가 추진하던 도시가스 저장 탱크 설치사업을 이곳으로 선정해 동네 주민들이 크게 기뻐하던 일이 생각난다.

고개를 넘어오다 보니 길 옆에 알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몇 개를 주워서 다시 언덕 쪽으로 던졌다. 야생동물들이 이 알밤 한 톨이라도 더 먹고 가라는 취지였다. 대금(大錦)을 지나는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등 뒤에 맨 가방에 꽂아둔 ‘거제 사랑’ 삼각 깃발이 바람에 날려 귓전을 계속 때린다. 그때마다 발걸음도 계속 빨라졌다.

복항 마을에 있는 매미성에서 오늘 일정을 마치기로 작정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하니 시청 표시 조끼를 입은 사람이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매미성이 꽤 유명한 관광지로 변했다는 걸 묵시적으로 웅변했다. 매미성으로 가는 길목 카페 여주인의 얘기를 잠깐 들었다. 자신들은 매미성 덕분에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는데, 정작 매미성을 만든 주인공은 아무런 수혜를 입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은혜를 아는 여주인의 마음이 참 예쁘다고 느꼈다.

비바람이 쏟아지는 매미성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했다. 바닷가 언덕배기 땅 주인이 태풍 매미로 무너진 땅을 지키기 위해 돌담을 쌓아 올렸고, 바다 방향에서 보면 마치 작은 성곽 같아 매미성으로 이름이 불리었고,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이제는 유명 관광지로 탈바꿈되었다.

고난이 준 선물이라 여겼다. 그 선물의 혜택은 주변 사람들이 더 받고 정작 그 주인공의 공적은 세인의 기억 속에 없다. ‘시에서 거제 관광 인프라 구축에 힘쓴 공로를 생각해서라도 그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를 맞고 걸은 오늘도 총 2만 2585보. 15㎞ 809m. 역시 40리쯤이다. (2021. 9. 14.)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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