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이야기] ‘찰리의 기타’ 찰리, 거제 강종호를 말할 것 같으면
[거제이야기] ‘찰리의 기타’ 찰리, 거제 강종호를 말할 것 같으면
  • 영담 기자
  • 승인 2019.03.18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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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에서, 거제를 사랑하는 작곡가로 성장
세계적 뮤지션 목표로 후진양성에도 큰 성과

Melancholy man-우울한 찰리

찰리는 부모님의 얼굴은 모른다. 세상을 알기 시작할 무렵 그의 곁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족의 전부였다. 학교를 다녔지만 친구도 많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학교에 갈 일도 없었다.

그렇게 일찍 세상으로 나간 찰리. 오토바이를 알게 됐다. 질주할 수 있고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오토바이가 좋았다. 그래도 외로웠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찰리의 우울함을 달래주는 것은 거제 옥림의 바닷가였다.

거기에는 파도가 있고 별이 있고 낭만과 음악이 있었다. 삼촌들이 기타를 치며 낭만을 노래하는 모습이 좋았다. 여섯 줄의 현에서 만들어 내지 못하는 노래가 없었다. 찰리는 기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렇게 기타는 찰리의 가장 좋은 벗이 되었다.

Bridge of troubled water-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중학교를 졸업하고 소년티를 채 벗지도 않은 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경찰과 마주했다. 헬멧을 쓰지 않은 찰리를 경찰이 제지했다.

“면허증 줘 봐!”

소년티 풀풀 풍기는 찰리에게 반말은 어쩌면 당연했다. 일단 찰리는 면허증이 있다고 변명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면허증 줘 봐!”

“진짜 면허증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경찰서로 갈래. 마지막으로 말한다. 면허증 줘 봐!”

끝내 찰리는 면허증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있다”고 우기기만 할 뿐.

“안되겠다. 경찰서로 가자.”

매섭게 닦달하던 경찰이 찰리를 경찰서로 끌고 갈 듯 내몰았다. 그리고 머지않은 곳에서 찰리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니, 면허증 없는 거 다 안다. 나도 원동기 면허증 없는데, 우리 같이 공부해서 따자.”

뜻밖의 제안이었다. 찰리에게 항상 냉담하던 세상이 처음으로 건 낸 따뜻한 손길이었다. 찰리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 경찰은 이제 막 전입 신고식을 마친 진 모 순경이었다.

그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됐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찰리는 기어코 원동기 면허증을 땄다.

그렇게 둘의 인연이 이어지던 어느 날, 찰리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뺑소니 사고였다. 병원비가 없는 찰리에게 그저 걱정만 앞설 뿐이었다. 그런 찰리에게 이번에도 진 순경이 병원비를 댔다.

이뿐이 아니다. 소년가장으로 군대에 갈 일이 없는 찰리에게 병무청에서 영장이 나왔다. 날짜가 시급했다. 그때도 진 순경이 이제 막 뽑은 자신의 승용차를 빌려 주며 “얼른 가서 해결해라”는 한 마디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이처럼 우울한 찰리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준 진 순경. 그 인연으로 인해 또 다른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찰리가 사는 세상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또한 그렇게 진 순경과의 인연은 30년 가까이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찰리,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다

찰리 강종호. 거제 옥림의 바닷가에서 기타와 인연을 맺었던 그가 본격적으로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20대 초반 쯤이다. 그가 잘 아는 선배가 부산에서 결성한 째즈밴드 ‘슈풍크’에 합류하면서다.

슈풍크는 우리가 어릴 적 열광했던 스웨덴의 어린이 드라마 ‘말괄량이 삐삐’에서 삐삐가 뛰어 오를 때 외우던 마법의 주문이다. “슈풍크!”

찰리의 기타 강종호 씨.
찰리의 기타 강종호 씨.

슈풍크에서의 활동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강종호는 스물다섯 되던 해에 인디밴드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서울의 홍대앞(홍익대학교 주변)으로 진출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를 스카우트한 프로듀서가 ‘크라잉넛’이라는 당대 최고의 인디밴드를 배출한 ‘드럭’이었다.

강종호가 음악적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된 드럭에서의 역할은 가수들이 콘서트 등을 할 때 ‘세션(Session)’으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만약, 크라잉넛에서 기타를 담당하는 이상면이 빠지거나 아니면 메인보컬이면서 기타리스트인 박윤식이 빠지면 그 자리를 채우는 역할로.

홍대앞에서 많은 가수들과 인연을 맺으면서도 특히 강종호가 잊지 못할 사람은 바로 가수 강산에다. 아버지가 실향민인 강산에는 거제 지세포에서 태어나 네 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옥림의 바닷가에서 기타와 인연을 맺은 강종호와 지세포가 고향인 강산에는 어쩌면 동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고 보니 성도 같은 ‘강’씨다.

다시, 거제와 맺어지는 인연

고향을 떠나도 잊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 강종호 또한 고향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그래서 서울에서 활동하면서도 고향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했다. 그리고 그가 고향 거제와 다시 연결되는 교두보로 공연기획이 진행됐다.

공연기획을 통해 같은 프로듀서 밑에서 활동하는 ‘크라잉넛’의 거제 공연을 두 번 유치했고, 당시 잘 나가던 듀엣 ‘캔’의 공연도 성사시켰다.

특히 ‘크라잉넛’의 공연을 유치하면서 새로운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는데 그 주인공이 이승열 전 거제교육장이다. 당시 거제공업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망치마을에서 펜션을 운영하던 이승열씨가 ‘크라잉넛’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한다.

‘크라잉넛’의 공연기획을 위해 강종호가 거제에 내려와서 머물렀던 곳이 이승열씨의 펜션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친해진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반 거제공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밴드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 프로젝트가 음악학원 ‘비틀즈’의 탄생 배경이 됐다. 거제에서 음악 좀 한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틀즈’를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강종호의 제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이 학원은 기타 등 대중음악을 위한 악기를 가르치는 거제의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학원이었다.

“한반도 밴드 학생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 학원이 돼버렸다. 그렇게 3년 정도 학원을 운영하다가….”

찰리의 기타

한반도 밴드의 창단을 위해 시작했던 ‘비틀즈’가 3년을 지나면서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갈 때 강종호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다.

“갑자기 대학에서 째즈 관련 교육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네덜란드에 있는 째즈 관련 대학에 진학할 결심을 하게 됐다.”

중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강종호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길은 검정고시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선 외국에서 1년을 공부하고 다시 귀국한 곳은 거제가 아니라 진주였다. 처가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문동 찰리의 기타 내부 모습.
상문동 찰리의 기타 내부 모습.

진주에서도 음악학원을 차렸는데 지금 그가 운영하는 학원과 이름이 같다. 바로 ‘찰리의 기타(Charlie's Guitar)’였다. 학원을 하면서 진주MBC에서 ‘찰리의 째즈 크루즈’라는 음악방송도 병행했다. 하지만 방송이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1년 정도 하다가 막을 내렸다.

좌절을 맛본 그가 선택한 길은 “후진을 양성하고 사랑하는 고향 거제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결심이 서자 짐을 싸서 곧바로 거제로 향했다.

그리고 거제 상문동에다가 ‘찰리의 기타’라는 음악학원을 다시 열었다.

세계적 뮤지션을 기르고 싶다

“제가 가르친 제자 6~7명을 미국의 유명한 음악대학에 보냈다. 제자들을 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매년 미국에 가서 학교에 대한 정보도 알아보고 있다.”

거제에 다시 정착해 ‘찰리의 기타’를 열고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는 강종호는 제자들이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에서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그가 느낀 한계를 제자들은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서울에 비해 시골인 거제 출신 음악가는 경쟁력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직접 경험해 본 결과 큰 세상, 다양한 음악을 빨리 접할수록 성장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제자들은 더 큰 세상과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유학을 권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을 잘 이해한 제자들의 성과는 제법 대단하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올해 초 2명의 제자가 미국 뉴욕의 롱아일랜드에 있는 ‘파이브타운컬리지’에 진학했다. 한 명은 작곡을, 다른 한명은 째즈기타가 전공이다. 또 다른 제자 1명은 캘리포니아에서 음악공부를 하다가 얼마 전 버클리음대로 편입학했다.

파이브타운컬리지는 2002년 혜성같이 등장해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락밴드 ‘마룬5’를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다.

이처럼 제자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강종호는 계속 미국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좋은 대학에 제자들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자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뮤지션이 되면 고향인 거제를 위해 좋은 것 아니겠나. 또한 제자들이 음악을 하다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모르지만 직업적 방향이 바뀌더라도 다양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제자들에 대한 기대가 큰 강종호는 머지않은 장래에 제자 중 훌륭한 뮤지션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제, 뮤지션이 아닌 작곡가로”

우울했던 찰리는 기타와의 만남, 좋은 사람과의 인연을 통해 인디밴드의 성지에까지 진출한 뮤지션이 됐다. 또 제자들을 양성하고 미국의 훌륭한 음대에 진학시키는 쾌거도 이뤘다.

그런 강종호지만 스스로는 뮤지션이기보다 작곡가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특히 그가 사랑하는 고향 거제를 위해 더 많은 곡들을 작곡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 강종호는 ‘찰리의 거제도’라는 1집 음반을 발매했다. 지난 2018년 9월 ‘물고기 뮤직’을 통해 발매된 이 앨범은 ‘종이배’, ‘섬마을 거제’ 등의 노래가 수록돼 있다.

강종호 1집 앨범 '찰리의 거제도'
강종호 1집 앨범 '찰리의 거제도'

강종호는 앨범 자켓의 인사말에서 “나의 아픔이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한 조각배임을 깨달음으로써 영원히 거제도의 품을 간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썼다.

사립유치원에서 의뢰해 영어로 된 동요도 작곡한 강종호는 벌써부터 2집 앨범도 준비하고 있다.

“2집 앨범도 거제를 알릴 수 있는 곡들을 수록할 예정이다. 그래서 거제 각 지역의 역사와 관련한 노래를 만들었다.”

1집처럼 2집도 거제에 대한 사랑을 담은 앨범을 준비 중인 강종호는 거제의 비경 중 하나인 대소병대도의 웅장함이나 거제가 낳은 서예가 성파 하동주 선생과 관련된 노래 등이 있다고 귀띔했다.

곧 앨범작업에 들어간다고 하니 오래지 않아 거제의 아름다움을 담은 강종호의 2집 앨법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에필로그

부모님의 얼굴도 모르고 할아버지·할머니 손에서 자란 강종호는 우울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를 지탱해 준 것은 6줄 현으로 어떤 곡이든 연주할 수 있는 마법의 상자와 같은 기타였다.

좋은 사람과의 인연, 부산으로 서울로 향하는 도전정신, 그리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어디에 있든지 항상 그의 마음속에 새겨진 이름 ‘거제도’는 고향이면서 그 이상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대처를 떠돌다 결국 고향 거제로 다시 돌아와 상문동 문동폭포 입구에 ‘찰리의 기타’라는 음악학원을 하며 후진양성과 작곡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향의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거제가 요구하면 언제든지 그런 노래를 만들겠다고 했다.

특히 강종호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많은 사랑을 베풀어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서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다. 특히 고향인 거제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 되돌려 주고 싶다”고 말했다.

찰리는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씩 거제의 아들 강종호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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