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모바일 읽기가 이해력을 퇴보시킨다!
[KISTI의 과학향기] 모바일 읽기가 이해력을 퇴보시킨다!
  • 거제뉴스아이
  • 승인 2019.02.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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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하고 있는 가족을 한 번 둘러보라. 휴대폰이나 태블릿 PC로 이야기책을 읽으며 부모가 건네주는 음식을 먹는 아이를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비행기에서 카페에서 모바일 기기로 뉴스를 보거나 전자책을 읽는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 한데 전통적인 종이 매체에서 벗어난 이런 읽기 방식이 우리 인지 능력에 커다란 타격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모바일 기기는 ‘대충 읽게’ 만든다

‘읽기’는 인간만이 하는 아주 독특한 정보습득 행위이자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고도의 지적행위이다.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 종에서 약 6천 년 전에 읽기를 담당하는 신경회로가 진화했다고 한다. 처음에 이 신경회로는 가축의 수 같은 단순한 일과 관련한 기초적인 정보 처리를 담당했으나 곧 읽기라는 복잡한 행위를 맡게 됐다,

왜 읽기가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지적행위일까? 그것은 우리가 읽기를 통해 지식을 내면화하고, 멀리 떨어진 지식을 연결하고, 분석하고 추론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해보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판적 사고와 번뜩이는 통찰은 독서를 꾸준히 해야만 나올 수 있다. 문제는 모바일 기기로 읽는 것은 종이 매체로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모바일 기기는 우리의 읽기 방식을 바꾸었다. 사람들은 대개 스크롤을 휙휙 내리며 큰 정보만 읽는 대충 읽기를 한다.
모바일 기기는 우리의 읽기 방식을 바꾸었다. 사람들은 대개 스크롤을 휙휙 내리며 큰 정보만 읽는 대충 읽기를 한다.

모바일 기기로 읽을 때 많은 사람이 ‘대충 읽기’를 한다. 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기보다는 스크롤을 내려가며 눈에 들어오는 대로 속독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 게시판에는 긴 글에 “3줄 요약 해주세요”라는 댓글이 달리고는 한다.

노르웨이의 심리학 연구팀은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읽기 매체에 따른 이해력의 차이에 대해 조사했다. 연구팀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사랑에 관한 단편 소설을 읽게 했다. 이때 한 집단은 종이책으로 읽고 다른 집단은 전자책으로 읽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종이책으로 읽은 집단은 전자책으로 읽은 집단보다 사건의 세부사항을 더 잘 기억하고 이야기 구조를 연대기 순으로 재구성하는 것도 더 잘했다. 이는 전자책으로 독서한 집단이 글을 대충 읽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렇기에 나중에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문학을 가르치는 대학 현장에서도 오늘날 학생들이 과거 학생들보다 빽빽하게 복잡한 글을 더 어려워하고, 읽기는 해도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대충 읽기가 우리 뇌에서 읽기를 담당하는 영역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읽는 능력은 인간이라면 모두가 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본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자극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깊이 읽고 추론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적절한 훈련이 있을 때 비로소 꽃 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충 읽기가 더 보편화되면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 모른다. 미래의 구성원들은 복잡한 내용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끼며, 가치 있는 사상을 생산하지 못하게 될까?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런 능력이 없다면 우리 삶과 사회가 삭막해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디지털 리터리시’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때

우리는 모바일 기기 혁명과 함께 하면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디지털 매체를 거부하고 종이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이미 디지털 매체는 우리 일상 속에 깊이 스며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정보 선진국에서는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이름의 교육을 펼치고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세계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며 스스로 생산까지 하는 종합적 능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둔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인터넷이나 각종 온라인 서비스, 스마트 기기 같은 디지털 매체가 나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도구’임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따라서 교육의 첫 번째 과정은 어떤 디지털 기기도 쓰지 않고 토론과 사고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 다음에야 디지털 도구를 사용해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이런 방식은 과거 디지털 교육에서의 뼈저린 실패 덕분에 나왔다. 미국에서 전교생에서 태플릿 PC를 제공하고 원하는 수업만 듣게 했던 IT 학교는 설립 5년도 안 돼 거의 문을 닫았다. 아이들이 맞춤법을 자동으로 고쳐주고 글을 읽어주는 기기에 의존하면서 디지털 기기를 쓰지 않는 학생들과 학습 격차가 났던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빨리, 더 많이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회성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정서적 능력, 그리고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협력할 수 있는 토론과 사고력이다.

디지털 기기의 맹목적 사용은 이런 시민을 길러내는 데 실패할지도 모른다. 한 순간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면 잠깐 내려놓고 내가 스마트폰을 도구로서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글: 최붕규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출처: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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