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이야기] 부족국가에서 거제시까지
[거제이야기] 부족국가에서 거제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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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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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는 삼한시대 변한 12개국 중 독로국(瀆盧國)이라는 부족국가다. 서기 677년 상군이라 했고, 신라 경덕왕 때인 서기 757년 처음으로 거제군이란 이름을 썼다.


고려 원종 때인 1271년 왜구의 침입으로 거창 가조현 등으로 피난 가 살다 151년 만인 1422년 돌아왔다.

거제군청 신축 모습
거제군청 신축 모습

조선 고종 때인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제부(巨濟府)에서 거제군(巨濟郡)으로 승격, 경상남도에 속한 거제군(1읍 8면)이 됐다.

1896년 13도 편제에 따라 경상남도 거제군이 됐다. 그러나 20년만인 1914년 3월28일 왜관헌(倭館憲)의 간계로 거제군이 용남군과 통합되면서 통영군이 됐다.

해방과 함께 이어진 1950년 한국전쟁으로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자 복군(復郡)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1950년 11월 27일 국회에 거제군 설치 법률안이 통과되면서 1952년 12월 14일자로 대통령령 제271호로 거제군 설치 법률이 공포됐다.

거제군 설치법이 공포되자 군청 위치문제로 지역적으로 갈등이 생기면서 군청 유치를 위해 진정서를 올리는 등 로비활동이 시작됐다.

거제면은 조선시대부터 거제의 부·군·현의 치소가 있는 등 유서 깊은 고을임을 내세웠고, 장승포지역은 근대문화의 발상지로 부산, 마산 등지의 교통(바닷길)이 편리한 문화·산업의 중심지라고 주장했다.

1968년 고현 풍경
1968년 고현 풍경
현재 고현시가지 전경
현재 고현시가지 전경

거제면과 장승포지역이 인물과 세력싸움으로 서로 맞서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고현지역은 사람부족, 세 부족으로 두 지역을 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거제면과 장승포지역의 싸움에 1953년 1월 22일자로 대통령 제737호에 의해 거제군 위치가 거제군 일운면 고현리로 결정돼 버렸다.

당시 위치에 연합군 포로수용소가 설치돼 있어 새 청사가 마련되기까지 장승포읍을 임시 위치로 했다.

거제군의 기구는 내무과와 산업과 2과를 뒀고, 내무과에 행정계 지방세계 사회계 병사계를, 산업과에 농정계 양정계 농사계 축산계 잠업계 산림계 수산계를 둬 2과11계였다.

정원은 국가공무원 29명과 지방(도비) 공무원 22명 등 모두 51명이었으며, 지방세 징수와 부녀, 군경원호, 방역 임시직원 9명까지 더해 모두 60명이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포로수용소가 철수된 후 포로수용소가 설치돼 있던 시설물 철거와 구획정리 등을 마치고, 1956년 10월30일 장승포 임시 청사에서 현 신현읍 사무소로 거제군 청사를 옮겨 사용하다 1990년 3월 1일 지금의 거제시 청사를 새로 지어 옮겼다.

거제시청
거제시청

거제군은 1989년 1월 1일 6개동(능포동 장승포동 마전동 아주동 옥포1·2동)으로 장승포읍이 장승포시로 승격되면서 거제도는 1개 시와 1개 군으로 나눠졌다.

그러다 6년만인 1995년 1월 1일 법률 제4774호 도·농 복합형태의 시 설치법에 따라 거제군과 장승포시가 거제시로 통합, 지금에 이르고 있다.

글 김석규 거제시 공보문화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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