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천날] 능지처참(陵遲處斬)…죄목(罪目)은?
[맨날천날] 능지처참(陵遲處斬)…죄목(罪目)은?
  • 김갑상 기자
  • 승인 2018.04.16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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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지처참이란 ‘능지처사(陵遲處死)’라고도 하며, 대역죄나 패륜을 저지른 죄인 등에게 가해진 극형이다. 언덕을 천천히 오르내리듯(陵遲) 고통을 서서히 최대한으로 느끼면서 죽어가도록 하는 잔혹한 사형으로서 대개 팔다리와 어깨, 가슴 등을 잘라내고 마지막에 심장을 찌르고 목을 베어 죽였다.

또는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죄인을 기둥에 묶어 놓고 포를 뜨듯 살점을 베어내되, 한꺼번에 많이 베어내서 출혈과다로 죽지 않도록 조금씩 베어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형벌이라고도 한다.


동종업종에 종사하는 지역 선·후배 사이에 술로 인해 어이없는 오해로 빚어진 사건에 이토록 무서운 형벌까지 들먹이며 패륜 범죄자 취급한 황당한 사건이 그들을 아는 지인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로 회자되어 퇴근 후 술자리에서 안주꺼리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사건의 발단은 약 3주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프닝의 주인공인 B씨와 K씨는 그날따라 퇴근 무렵 심심하면 자주 들락거리는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Y씨의 사무실에 찾아 가서 커피 한잔에 시덥잖은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다 저녁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가고 어둠이 짙어 올 쯤 누군가 퇴근 후 딱히 약속이 없으면 소주 한 잔을 제안한다.

누가 마다 하겠는가. 모두 한마음이 되어 중곡동으로 이동하는 도중 인근 조선소에 근무하는 S씨도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그들은 목적지인 횟집에 도착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소주 한잔에 우애를 다졌고 두 잔에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논하였고 석 잔에 지역 경제의 침체에 대한 한탄을 마셨다. 그렇게 쌓여 가는 술병과 더불어 밤도 깊어 가고 있었다.

횟집에서 나 온 무리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인근 단골집인 호프집으로 반사적으로 발길을 옮겼다. 봄비가 무리들의 어깨를 적셔주고 있었다.

이미 1차에서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의 음주인생은 이미 달인의 경지에 이른 고수들이었다. 이 자리가 처음이란 자세로 이젠 소맥을 들어붙기 시작하였다. 다양한 장르의 온갖 개소리를 늘어 놓으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그중 가장 연장자인 A씨가 자리를 마무리 하자고 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대로 자신들의 안식처로 갔다면 그 날의 술자리는 아름다움으로 간직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돌연 그중 가장 막내인 K씨가 A씨의 팔을 잡으며 노래방 가서 딱 노래 한 곡만 하고 가자고 매달린다. A씨는 녀석의 집요함을 알기에 단호히 거절한다. 녀석은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A씨는 나머지 두 사람을 쳐다본다. 두 사람은 묵시적으로 노래방에 가는 것으로 눈빛을 보낸다. 그렇게 패륜(?)의 서막이 올랐다.

이미 만취한 무리들은 노래방에서 순서를 번갈아 가며 자신들 만의 가요대전에 빠져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무리들은 노래방에서 나왔을 땐 초저녁에 내리는 비는 기온이 떨어져 진눈깨비로 변해 마구 쏟아 붙고 있었다.

녀석들은 우산도 없는 급한 마음에 다시 호프집으로 급히 대피하였다. 그곳에서 택시와 대리운전을 불러 각자 귀가 할 요량이었다. 먼저 도착한 A씨는 택시를 불러 가버리고 같이 온 K씨는 그곳에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5분 후 비 오는 날에 무슨 이야기를 하다 온 건지 뒤늦게 도착한 B씨와 S씨는 남아있는 K씨와 다시 술판을 벌인다. 만취한 녀석들은 술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때 돌연 자신의 몸을 뒤적이던 B씨가 지역 후배인 K씨에게 다짜고짜 차 키를 내 놓으라며 성깔을 부린다.

이에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진 K는 “왜 형님 차 키가 저한테 있습니까?”하며 억울해 한다. B씨는 더욱 화를 내며 호주머니를 살펴보라며 격노한다. 마지못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테이블 위해 손바닥을 펼치니 거짓말처럼 B씨의 차 키가 앙증맞게 손바닥 위에 올려져있었다.

B씨는 그것 보란 듯이 고함을 지른다. “선배를 갖고 노네 이 자식이, 너 그라고 지갑도 가져 갔제. 그것도 내놔라.” 하며 윽박 지른다. 다시 손을 넣어 보니 이번엔 오른쪽 자켓 주머니에 지갑이 들어 있었다.

K는 자신도 못 믿겠다는 듯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 하니 B씨와 S씨를 번갈아 쳐다본다. 흥분한 B씨는 “야! 임마, 너 형님을 머로 보고 이라노. 아무리 술이 취해도 그렇지. 고참을 능멸하면 능지처참형이야. 알아 몰라.”

K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와 이기 내 주머니에 있지. 형님, 진짜 억울합니다.” 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항변한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라스트 스테이지도 막이 내렸다. K씨의 억울함을 아는지 진눈깨비는 바람까지 동반되어 밤하늘에 흩날리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숙취에서 깨어 난 B씨가 아침밥도 한 술 뜨지 못하고 출근을 재촉하고 있는 도중 그의 집사람이 다가 와 잔뜩 인상을 쓴 채 “이젠 하다하다 도대체 뭘 하고 돌아 다니길래 옷도 바꿔 입고 다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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