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재능과 악마의 영혼을 가진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④
신의 재능과 악마의 영혼을 가진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④
  • 김갑상 기자
  • 승인 2017.12.1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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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주 캣스킬의 공동묘지, 건장한 중년의 사내가 초립을 쓴 채 하염없이 한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눈가에는 쉴 새 없이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 마이크 타이슨을 모른다. 커스 다마토를 제외하곤….”


그가 바라보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한 소년이 불씨와도 같은 재능을 갖고 내게로 왔다. 내가 그 불씨에 불을 지피자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키울수록 불은 계속 타올랐고, 결국 찬란히 빛나며 활활 타오르는 아름다운 불꽃이 되었다.”(“A boy comes to me with a spark of interest, I feed the spark and it becomes a flame, I feed the flame and it becomes a fire, I feed the fire and it becomes a roaring blaze.”)

타이슨의 스승이자 양아버지인 커스 다마토의 묘비.
타이슨의 스승이자 양아버지인 커스 다마토의 묘비.

아수라 형상을 연상시키는 중년의 사내는 한 때 무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전설의 지존 마이크 타이슨이었다. 세인들은 그를 가리켜 ‘핵주먹’ 또는 ‘철의 사나이’이라고 불렸다.

타이슨이 바라보는 그 묘비의 주인은 프로이드 패터슨, 호세 토레스, 마이크 타이슨을 전설의 반열에 올려놓은 명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였다. 그는 타이슨의 양아버지이기도 했다. 마이크 타이슨은 1966년 6월 30일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난다. 그의 본명은 마이크 제라드 타이슨이다.

타이슨은 출생과 함께 자신 앞에 펼쳐진 암울한 삶의 환경을 직면한다. 브루클린의 슬럼가, 게다가 그는 흑인이다. 술과 마약은 그들 부모에게는 일상이다. 일반 가정교육과 정규 교육은 먼 달나라 이야기다. 타이슨이 두 살이 되던 해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떠난다. 마치 예고된 스토리처럼.

타이슨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범죄의 터널로 들어간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동이 법을 어기는 것조차 모르고 일상화 되어 있었고 훔치는 것도 모자라 흉기로 협박하여 타인의 재물을 탐낸다. 그가 9세부터 12세까지 3년간 51회에 걸쳐 체포되는 기록을 남긴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감시 대상이던 소년 타이슨은 할머니들을 흉기로 협박하여 돈을 갈취하는 강도사건에 연루되면서 결국 브롱크스의 스포포드 소년원에 감금된다.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한줄기 빛이 찾아온다. 그 빛의 실체는 당금 무림의 절대지존 무하마드 알리였다. 알리는 시간이 허락하면 소년원을 방문, 제소자 모두에게 꿈을 아로새겨 준다.

어린시절의 타이슨과 커스.
어린시절의 타이슨과 커스.

복싱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가슴에 새길 쯤 타이슨은 다시 최악의 소년범을 모아 놓은 엘름우드로 옮긴다. 거기에서 타이슨은 자신 인생에서 전설의 초석이 될 바비 스튜어트를 만난다. 바비는 전직 복서로서 소년원을 돌며 원생 갱생을 위해 복싱을 가르치고 있었다.

바비를 만난 타이슨은 “무공을 가르쳐 주십시오. 머리를 땅에 처박으며 사정한다.” 이에 바비는 “너는 뉴욕 최고의 악동이다. 까닭 없이 타인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정화도 필요하다. 복싱은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스포츠다. 이것이 이해되면 제자로 받아들이겠다.” 타이슨은 망설임 없이 승복한다.

바비는 무공을 전수하면서 천무지체를 타고난 타이슨에게 놀란다. 그의 파괴력과 동물적인 본능은 지금껏 본적도 없는 기재였다. 바비는 자신의 스승인 커스 타마토에게 전서구를 띄운다. “스승님 거대한 원석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재능은 저가 감당하기에는 벅찹니다. 스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2년의 시간이 지난 후 바비는 소년원을 나온 타이슨과 함께 커스의 체육관을 방문한다. 이때 커스는 죽어가고 있었다. 72세의 고령에다 폐렴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바비는 커스의 눈앞에서 타이슨과 스파링을 펼친다. 경기가 시작되자 커스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커스는 자신이 더 살아야 될 이유를 발견한다.

훗날 커스는 타이슨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술회한다.

“세상의 섭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묘하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좋아하는 일과 사람들을 찾아 나간다. 그 다음 세상은 그것을 하나씩 빼앗아 간다. 이는 죽음을 맞이하라는 준비와 같다. 또 내 친구들은 다 죽었다. 난 눈도 잘 안보이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기쁨을 잃은 후 비로소 죽음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타이슨이 나타났다. 타이슨은 내 모든 것이다. 내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보석을 발견한 커스는 타이슨에게 두 가지를 가르친다. 첫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절세비공이고 둘째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커스는 타이슨 어머니의 동의를 구해 그를 양자로 입양한다. 타이슨이 커스의 양자로 입양되고 16세가 되던 해 그의 어머니는 지병으로 사망한다.

어린 타이슨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커스.
어린 타이슨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커스.

커스는 타이슨이 헤비급으로선 작은 178센티의 키를 극복하면서 파괴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이른바 ‘피카부 스타일(peekaboo style)’란 무공을 창안한다. 피카부 스타일은 가드를 얼굴에 바짝 붙이고 머리를 끊임없이 좌우로 흔들며 상대방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어 적의 공격을 무력화시킴과 동시 자신의 공격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무공이다. 이는 타이슨에게는 맞춤형 무기인 것이다.

신무기를 장착한 타이슨은 하루가 다르게 절세고수로 변해가고 있었다. 먼저 아마추어로 데뷔한 그는 24승(21KO) 3패의 놀라운 파괴력을 발휘하지만 미국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하고 프로에 눈길을 돌린다. 커스의 헌신과 열정으로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 되어 가고 있었다.

1985년 3월 6일, 타이슨이 꿈에 그리던 강호입문의 날짜가 확정되었다. 장소는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컨벤션센터.

비무 전날 타이슨은 커스에게 “스승님, 내일이 두렵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이에 커스는 이렇게 답변한다.

“두려움은 친구이자 적이다. 마치 타오르는 불과 같다. 조절만 할 수 있으면 널 따뜻하게 해 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너와 네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다. 초원을 달리는 사슴을 상상해 보라. 반대쪽 덤불 속에 퓨마가 숨어 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 느껴지는 두려움은 곧바로 생존을 위한 자연의 섭리로 작용한다. 네가 위대한 전사로 남고 싶으면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 들여라. 두려움이 없으면 죽는다. 두려움은 우리를 싸우도록 일으키는 자연의 힘이다. 영웅과 소인배가 느끼는 두려움은 똑같다. 다만 영웅은 두려움을 정면으로 맞서지만 소인배는 도망친다.”

타이슨은 커스의 가르침을 가슴속에 새기고 전장에 나선다. 상대 헥터 메르세데스는 타이슨의 집요한 바디 공격에 2분을 채 버티지 못한다. 그렇게 전설은 시작된다.

파죽지세였다. 타이슨은 한 달에 한 두 번씩 비무장에 오르는 왕성한 정력을 선보이며 1986년 3월 10일까지 19연속 KO승 가도를 달린다. 이중 열두 번을 1회에 끝내는 괴력을 보인다. 강호에 발담근지 1년만의 일이였다.

연승가도를 달리는 과정에서 타이슨의 트레이너이자 양아버지인 커스를 잃는다. 커스는 1985년 11월 4일 지병인 폐렴으로 사망한다. 타이슨은 하늘을 우러러 다짐한다. “반드시 지존의 벨트를 당신의 무덤에 바치겠노라고.”

트레버 버빅에게 강력한 라이트를 날리는 타이슨.
트레버 버빅에게 강력한 라이트를 날리는 타이슨.

이후 타이슨은 트레버 버빅에게 도전하기 전까지 또 다시 8연승(6KO)을 쓸어 담는다.

27연승(25KO)의 괴물 타이슨을 언론은 물론 거물 프로모터 돈 킹도 주목한다. 돈이 되는 비무는 빠르게 주선되기 마련이다. 헤비급은 무하마드 알리, 조지 포먼, 조 프레이저가 떠나 버린 후 더 이상의 황급 체급은 아니었다.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고심하던 관계자는 타이슨의 시합을 보며 군침을 흘린다. 한마디로 돈이 되는 물건이 등장한 셈이었다.

살아생전 커스가 그토록 고대하던 타이슨의 천하재패를 위한 장소가 결정된다. 1986년 11월 22일 네바다주 라스베가스 힐튼 호텔 특설 링, WBC 헤비급 타이틀매치. 상대는 거구 트레버 버빅이었다. 버빅은 26승(21KO) 1무승부 무패의 강타자 핑클론 토마스를 판정으로 제압하고 왕좌에 오른 뒤 타이슨과는 1차 방어전이었다. 당시 버빅은 31승(23KO) 1무 4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타이슨의 천하를 향한 진군의 나팔 소리가 마침내 울린다. 링 중앙에서 맞선 두 전사에게 탐색전은 없었다. 1회부터 난타전을 전개하다 종료직전 타이슨의 강력한 왼손에 버빅이 쓰러지지만 라운드 종료 공이 그를 구원해 준다.

2회, 상처 입은 먹잇감을 본 맹수로 변한 타이슨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초반 버빅은 또 한 차례 링 바닥에 쓰러진다. 승기를 잡은 타이슨의 맹공이 시작된다. 거의 매타작에 가까울 정도로 버빅이 쩔쩔맨다.

종료 30초 전 타이슨의 레프트가 버빅의 관자놀이에 꽂힌다. 바닥에 쓰러진 버빅은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쏟아 붙지만 몸은 그의 정신과 별개였다.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두 차례에 걸쳐 일어섰다 쓰러지기를 반복하자 주심이 경기를 끝낸다. 2회 2분 45초 만의 일이었다.

버빅과의 비무는 위대한 타이슨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그가 강호에 출사한지 1년 8개월 16일만의 일이었고, 태어난 지 20년 4개월 16일만의 거사였다. 헤비급 역사상 최연소 챔프 등극이기도 했다.

타이슨은 지존의 벨트를 움켜지고 링 한가운데서 포효한다. “커스, 보고 있습니까. 저승에서 복싱의 신들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저 녀석이 내가 키우고 가르친 타이슨이다.”

전성기의 타이슨.
전성기의 타이슨.

타이슨의 파괴력에 매료된 세인들은 그가 천하통일을 이루길 원한다. 선봉은 프로모터 돈 킹이 앞장선다. WBC 맹주에 오른 지 채 4개월이 되기도 전 타이슨은 WBA 왕좌마저 접수하기 위해 라스베가스 힐튼 호텔로 진군한다.

1987년 3월 7일, 상대는 팀 위더스푼을 제압하고 새로운 지존이 된 19승(14KO) 5패의 제임스 스미스였다. 비무 시작과 동시 193센티의 거구 스미스는 도망치기 바빴다. 12회 동안 그가 휘두른 무공은 없었다. 심판전원일치 압도적인 판정승이었다. 이로서 타이슨은 양대 기구를 한손에 움켜진다.

하지만 여기서 타이슨의 약점이 드러난다. 자신보다 신장이 크고 특히 잽을 자주 내밀고 정통파 복싱을 구가하며 빠른 발로 이용한 전법에 약점을 보인 것이다. 이는 훗날 증명된다. 만약 커스가 살아서 이 시합을 보았더라면 분명히 개선하였을 것이었다.

여하튼 헤비급은 타이슨의 등장으로 시장이 들끓기 시작한다. 3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통합타이틀 1차 방어 상대가 정해진다. 트레버 버빅에게 맹주의 자리를 내어준 핑클론 토마스.

토마스는 6회가 한계였다. 타이슨도 그랬고 돈 킹도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복싱기구 IBF 마저 넘본다. 상대는 34전승(29KO)에 빛나는 토니 터커였다. 터커는 강타자 제임스 더글라스를 TKO로 제압하고 첫 상대가 타이슨이었다. 그는 2미터에 가까운 장신이었다.

1987년 8월 1일 네바다 라스베가스 힐턴호텔, WBA/WBC/IBF 헤비급 통합타이틀 매치.

무패가도를 달리는 두 괴물의 맞짱은 기대와는 달리 판정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타이슨의 심판전원일치(118:113, 119:111, 117:112) 판정승이었다. 그렇게 타이슨은 천하를 통일한다. 그가 WBC 지존에 오른 후 불과 7개월 9일 만의 일이였다.

레녹스 루이스가 타이슨을 난타하고 있다.
레녹스 루이스가 타이슨을 난타하고 있다.

천하를 한손에 움켜쥔 지존 타이슨은 3대 기구 통합타이틀매치 1차 방어 상대를 LA올림픽에 이어 서울올림픽 슈퍼 헤비급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타이렐 비그스를 지목한다. 당시 비그스는 15연승(10KO)을 달리고 있었다.

1987년 뉴저지 알틀란틱시티 컨벤션 홀, 타이슨은 초반 비그스의 빠른 발과 날카로운 잽에 고전하지만 3회 레프트 훅으로 눈 밑을 찢어 놓자 비그스의 얼굴은 선혈이 낭자하다.

7회, 1분을 남기고 타이슨은 맹공을 가한다. 난타전 끝에 레프트 훅이 명중하자 비그스는 쓰러진다. 몸은 링 밖으로 절반쯤은 나가있다. 다시 일어서지만 또 다시 레프트가 턱에 그림처럼 꽂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렇게 1차 방어전이 마무리 되고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해가 밝아 오자 타이슨에게 백전노장 래리 홈즈가 도전장을 내민다. 홈즈가 누구던가. 당시 WBC 왕좌 켄 노튼을 15회 판정으로 제압한 후 5년 동안 16차 방어 위업을 달성했으며 그 중 열두 명은 마지막 공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리고 WBC 왕관을 박탈당한 후 IBF 지존에 올라 두 차례 방어전을 치른 노장이 아니던가. 또 그는 50전(48승 34KO 2패)을 치루면서 단 한사람, 마이클 스핑크스에게만 패했다.

1월 22일 뉴저지 알틀란틱시티 컨벤션 홀, 결전의 장에 불혹을 앞 둔 백전노장이 입장한다. 투지에 불타는 타이슨과 달리 그의 눈은 ‘무심’ 그 자체였다. 1~3회, 집요하게 안으로 파고드는 타이슨을 결사적으로 홈즈는 저지한다. 타이슨의 단발성 히트에 맞서 홈즈는 끊임없이 잽을 내밀며 자신의 거리를 유지한다.

4회, 지루하게 흘러가던 결투가 80여 초를 남기고 요동친다. 타이슨의 기습적인 라이트 훅이 안면에 명중한다. 쓰러진 홈즈는 카운트 8에 일어서지만 또 다시 드러눕는다. 30초를 남기고 둘은 난타전을 전개하지만 정확도는 이미 타이슨 쪽으로 저울의 추가 기울고 있었다. 종료 5초전, 타이슨의 강력한 라이트가 적중되면서 모든 것이 끝난다. 통합타이틀 2차 방어전도 그렇게 종지부를 찍고 있었다.

가벼운 몸 풀듯 2차 방어를 마무리 한 타이슨은 일본 도쿄돔으로 원정을 떠난다. 상대는 토니 텁스, 텁스는 그렉 페이지를 물리치고 WBA 지존에 오른 경험이 있다. 당시 그는 24승(15KO) 1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2차 방어가 끝난 후, 두 달 뒤에 치르진 이날 경기는 단 세 번의 주먹질에 상황은 종료된다. 1회를 소강상태로 보낸 타이슨은 2회 시작과 동시 바디 공격에 이은 라이트 그리고 가공스런 레프트 훅, 주심은 더 볼 것 없다는 식으로 경기 중단을 선언한다. 닭 모가지 비틀듯 간단하게 3차 방어의 벽을 넘는다.

야수 타이슨과 홀리필드의 1차전.
야수 타이슨과 홀리필드의 1차전.

승승장구하던 타이슨에게 불세출의 고수가 진검승부를 요청해 온다.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민 자객은 마이클 스핑크스였다. 그는 형제 복서로도 유명하다. 그의 형 레온 스핑크스는 무하마드 알리를 주저앉힌 장본인이었다.

마이클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강호에 발들인 후 무적을 자랑하였다. 크루저급(현, 라이트 헤비급) 지존에 올라 3대 타이틀 통합을 이루어낸 절대군주였고 타이틀을 반납한 후 IBF 헤비급마저 석권한 영웅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는 15차례 세계타이틀매치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었다.

1988년 6월 27일, 세인들은 무패를 자랑하는 두 절대고수의 비무를 보기위해 뉴저지 아트란틱 시티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마이클은 당시 31전승(21KO)를 기록하고 있었고 타이슨에 비해 열 살이나 더 많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던가. 세기의 대결은 단 91초 만에 종지부를 찍는다.

비무 개시와 동시 마구잡이로 파고들던 타이슨의 라이트가 적중하자 도전자는 힘없이 무너진다. 다시 일어섰지만 그것은 만용에 불과했다. 10여초의 무자비한 매타작에 도전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없이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 싱거운 방어전이었다. 패한 도전자는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간다.

타이슨은 신이 뻗친 듯 무풍지대를 달린다. 1989년, 그는 두 차례의 방어전을 치른다. 프랭크 부루노를 라스베가스 힐튼호텔 특설 링에서 5회 레프리 스톱 승으로 물리치고 이어 칼 윌리암스를 1회 1분 33초 만에 날려버리고 통합타이틀 6차 방어를 마무리한다.

타이슨에게 어둠이 짙어 오고 있었다. 그 어둠의 실체는 돈과 향락과 무절제였다. 방탕한 그를 바로잡아 줄 절대적인 멘토인 커스 다마토가 그의 옆에 없었다.

한 경기당 천만 달러가 넘는 대전료는 그를 자만과 나태 그리고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다. 주변에 그 누구도 그의 무절제를 바로 잡아줄 이는 없었다. 기생충처럼 타이슨 옆에 붙어 호의호식하며 향락을 부채질하는 개체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타이슨의 몸도 마음도 병들어 갈 쯤 7차 방어 상대가 결정되고 있었다.

상대는 비교적 약체 제임스 더글라스였다. 더글라스는 24승(19KO) 1무 4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는 그저 그런 자객이었다. 1990년 2월 11일 일본 도쿄돔, 세인들 중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기적이 일어난다. 절대지존이며 천하무적인 타이슨의 몰락이 시작된다.

비무가 시작되자 세인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천하에 그 어떤 자객이 타이슨과 진검승부를 한단 말인가. 더글라스는 용사였다. 그는 처음부터 한 치도 물러섬이 없이 괴물 타이슨과 맞짱을 떴다. 끊임없이 몸 쪽으로 파고드는 타이슨을 팔꿈치로 밀어내며 자신의 거리를 유지하며 쉴 새 없이 난타전을 벌인다.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구름처럼 운집한 세인들은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든다. 연습부족으로 확연하게 지쳐 보이는 타이슨과 달리 더글라스는 에너지가 넘쳤다.

8회, 종료 5초를 남기고 타이슨의 강력한 라이트 어퍼컷이 더글라스의 턱에 명중한다. 캔버스에 쓰러져 정신을 못 차리는 더글라스, 주심은 느린 카운터로 더글라스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공이 지옥행 열차를 탔던 더글라스를 구해 준다.

9회, 더글라스는 다운을 허용한 전사답지 않게 오히려 시작과 동시 타이슨을 세차게 몰아 부친다.

10회, 기적이 일어난다. 현저하게 체력이 떨어진 타이슨을 더글라스가 인정사정없이 두들긴다. 1분이 지날 쯤, 레프트에 이은 라이트 그리고 두 방의 연타가 작렬한다. 그것으로 도쿄대첩은 마무리된다.

더글라스가 이루어 낸 대반란의 역사였다. 도박사들의 9:1의 절대적인 열세를 뒤집은 것이었다. 왕좌를 탈취한 더글라스의 천하는 길게 가지 못한다. 1차 방어에서 에반더 홀리필더에게 허무하게 무너져 그의 천하는 단명한다.

패한 타이슨은 심기일전, 권토중래를 꿈꾸며 네 차례의 재기전에서 4연승(3KO)을 달린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천하 재탈환의 시나리오는 타이슨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악마의 영혼이 모든 일을 망쳐버린다. 1991년 7월, 당시 18세의 미인대회 출신 흑인소녀를 강간한다. 그 유명한 워싱턴 강간사건이었다.

타이슨은 강간혐의로 기소되어 1992년 3월, 6년 징역의 실형을 언도받고 3년 동안 복역한 뒤 1995년 3월 25일 가석방된다. 3년의 세월 뛰 넘고 타이슨은 강호로 돌아온다. 침체기에 빠져 있던 헤비급의 시장이 꿈틀거린다.

돈이 되는 장사는 빠르게 성사 되는 법, 두 차례의 재기전을 거쳐 1996년 3월 16일 자신의 5차 방어 상대였던 40승(38KO) 4패에 빛나는 강타자 지존 프랭크 부루노를 3회 50초 만에 요절내고 WBA 왕관을 손에 쥠과 동시 천하에 타이슨의 죽지 않았음을 알린다.

지존의 자리에 오른 6개월 후 부루스 셀덤을 어린애 손목 비틀듯 1회에 박살내고 1차 방어를 마무리 한 후 2차 방어를 준비한다. 상대는 에반더 홀리필더. 1996년 11월 8일 라스베가스 MGM가든, 홀리필더는 당시 32승(23KO) 3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홀리필더는 타이슨을 침몰시킨 더글라스의 전법을 똑같이 구사하는 지혜를 선보인다. 접근하면 밀어내고 자신의 거리에서 난타전을 전개한다. 그렇게 압도적인 우위 속에 타이슨은 만신창이가 된 채 11회까지 버티다 무너진다.

해를 넘긴 1997년 6월 28일, 홀리필더와 재대결이 성사된다. 이 날은 프로복싱이 태동하고 가장 수치스런 날로 기록된다. 공이 울리고 홀리필더는 전판과 같은 전략으로 타이슨을 몰아 부친다. 자신의 뜻대로 시합이 풀리지 않자 가슴속에 꿈틀거리던 악마의 영혼이 또 다시 고개를 내민다.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는 타이슨.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는 타이슨.

타이슨이 사용한 무공은 핵주먹이 아닌 핵이빨이었다. 3회 종료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대에 세인들은 자신을 두 눈을 의심했다. 링 중앙에서 클린치 된 상태에서 타이슨이 홀리필트의 귀를 물어 뜯는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었다. 3회 실격패였다.

그렇게 위대했던 악동 타이슨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 후 몇 차례의 재기전을 거쳐 2002년 6월 8일 레녹스 루이스에게 3대 통합타이틀에 도전, 다시 한 번 위대했던 제국의 부활을 꿈꾸지만 예전의 타이슨이 아니었다. 놀림만 당하다 8회에 주저앉고 만다.

이 후 타이슨은 대니 윌리엄스, 캐빈 멕브라이드에게 무참하게 무너진 후 2005년 5월 파란만장했던 강호생활을 뒤로 하고 은퇴를 선언한다. 타이슨의 은퇴 후 세인들은 “만약, 커스 다마토가 10년 아니 5년만 더 타이슨과 함께 했더라면 복싱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훗날 타이슨은 그의 스승이자 양부인 커스 다마토에 대해 이렇게 술회했다.

“커스는 내게 있어 성경과도 같았다. 그는 매일 밤 위대한 챔프들의 경기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의 강점을 모두 전해 주었다. 잭 뎀프시의 야성, 록키 마르시아노의 심장, 무하마드 알리의 개성과 캐릭터. 당시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커스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이가 든 지금 모든 것을 이해한다.”

전성기 시절 타이슨은 3억 달러에 가까운 거금을 벌어 들였지만 이혼과 호화스런 생활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파산신고를 했다. 타이슨은 은퇴 후 한참이 지난 다음 제임스 토백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마이크 타이슨’ 그는 축복이자 저주를 한 몸에 받은 사탄의 인형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의 이름은 광란과 얼룩진 인생과 처절한 몰락의 대명사이지만 잃어버린 순수함과 비극적인 표상인지도 모른다. 또 타이슨은 스포츠 역사상 디에고 마라도나에 이어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미국 한 언론지 기자는 타이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의 은총이 없었더라면 나도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2011년 타이슨이 은퇴 한 뒤 6년 후 위대한 전사들의 집합체인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위대함? 위대함이란 네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너로 인해 얼마나 위대하게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위대함의 정의이다.” -커스 다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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