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story] 존 메이저 영국 총리가 YS를 찾아 온 까닭
[behind story] 존 메이저 영국 총리가 YS를 찾아 온 까닭
  • 윤광룡 기자
  • 승인 2017.11.22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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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 5일, 한국을 방문한 존 메이저 영국 총리가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언론은 이날 한영정상회담이 양국의 접촉이 처음 이루어진 지 200년이 된 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이루어졌다고 소개했다.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경제와 안보에서 긴밀한 협력을 다짐하는 공동합의와 함께 향후 우의를 다지는 알찬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굳이 사람들이 기억도 못하는 ‘한국과 영국의 첫 만남 200년’을 메이저 총리가 한국에 와서 기념해야 할 만한 사안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궁색한 이유를 내세워 영국 총리가 한국에 온 배경에는 모종의 ‘전략적 결정’이 있었다.
영국의 뱅가드급 핵잠수함. 1996년 2월 초 영국 뱅가드급 핵잠수함이 서해에 좌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의 뱅가드급 핵잠수함. 1996년 2월 초 영국 뱅가드급 핵잠수함이 서해에 좌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뱅가드급 핵잠수함이 서해 갯벌에 처박힌 기막힌 사연

사건은 1996년 2월 초에 있었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극심한 전라도 군산 인근의 어장에서 한달 후에 영국 총리까지 한국으로 불러들일 만한 초대형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2월 초의 군산 외항 지역은 조수 간만의 차이가 거의 6미터에 육박한다.

새벽 2~3시께 5~6미터 정점에 달하던 만조는 이후 급속히 빠지기 시작해 아침 8~11시께에는 12~40센터미터까지 내려앉는다. 이런 자연적 특성을 안다면 감히 어떤 잠수함이 함부로 연안으로 접근해서 하룻밤을 지내겠는가.

새벽에 멋모르고 연안으로 들어 온 영국의 뱅가드급 핵잠수함이 급속히 물이 빠지던 아침에 오도 가도 못하고 갯벌에 그대로 갇혀버렸다. 여명의 아침에 어장을 살펴보던 주민들은 커다란 고래 모양의 검은 물체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갯벌에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민의 신고로 군부대가 출동한 것과 동시에 토머스 해리스 주한 영국대사는 우리 국방부에 긴급히 영국 잠수함의 좌초 사실을 알리며 구조를 요청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국제법상으로 잠수함이 남의 나라 영해에 들어갈 때는 사전에 상대국에 통보하고 반드시 부상하게 되어 있다. 이런 전략무기가 상대방 몰래 수중으로 들어오는 것은 이유를 막론하고 중대한 주권 침해이자 도발 행위였다.

일단 영국 잠수함에 대한 조사와 구조를 마친 국방부는 이 사건이 중대하고 복잡한 정치군사적 문제라는 점을 직감하고 국방연구원으로 하여금 후속조치 방안을 강구하도록 지시했다.

지난 1996년 3월 5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영국의 존 메이저 총리가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지난 1996년 3월 5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영국의 존 메이저 총리가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국방연구원에서 국제법 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특별팀은 토머스 해리스 영국대사를 불러들여 구조에 소요된 경비를 정산시키는 동시에 영국의 국제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추궁했다.

이 사건의 중대성을 모를 리 없는 영국대사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그리고 한달 후 풍성한 경제협력 선물을 들고 메이저 총리가 김영삼 대통령을 찾아 온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김영삼 정부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 보좌관을 지낸 정의당 김종대 국회의원이 지난 2013년 월간 인물과 사상 11월호 ‘김종대의 안보설명서’ 기고 글에서 밝혀졌다.

김종대 의원은 지난 2015년 ‘디펜스21’ 편집장 시절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영국과 협상한 국방연구원(KIDA) 쪽 사람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라며 “남아있는 자료는 없고, 사람으로부터 들은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당시 해군 전대장을 했던 한 예비역 장성도 당시 잠수함 출몰 사건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동해에서 해군 1함대 전대장을 했던 이 예비역 장군은 “당시 중국과 서해안 경계 쪽에 (미상의) 잠수함이 이동하는 것을 발견해, 우리 해군의 P-3(초계기)가 출동해 목표물을 잡았으나 놓쳤다”며 “그래서 해군의 대잠 능력이 그것밖에 안되느냐는 질타를 많이 받아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동해에 있었지만 당시 해군들은 대부분 알 것”이라며 “하지만 그 잠수함이 영국 것인지, 군산에서 좌초됐는지까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좌초가 됐다면 오히려 그 잠수함이 정지된 상태였을 것이므로 소나(음파탐지기)에 암초로 잡혀 식별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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