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無題)
무제(無題)
  • 김갑상 기자
  • 승인 2017.11.2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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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2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날 오전 10시 거제 김영삼대통령기록전시관 앞 광장에서 ‘김영삼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이 열린다. 고 김영삼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로 인해 많은 업적들이 가려졌지만 이 땅에 민주화의 새벽을 연 위대한 정치인이었다. 제14대 대통령 취임이후 하나회 해체를 비롯해 금융실명제 실시, 역사바로세우기 등 수많은 개혁조치를 단행해 지속적인 국가발전의 초석을 마련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영광의 시간은 짧았고 고뇌와 고통의 시간은 길었다.”
1993년 8월,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를 발표하는 김영삼 대통령.
1993년 8월,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를 발표하는 김영삼 대통령.

#1. 청와대 뒷산에 골프연습장이 없어진 사연

취임 후 청와대로 거처를 옮긴 YS가 비서와 함께 경내를 돌아보다가 뒷산에 골프연습장을 유심히 바라보다 수행원에게 묻는다.

“공치면 공은 누가 주 오노?”
“각하, 군인들이 쫘악 깔려 있습니다.”
“뭐라꼬! 군인들이 나라 지키라고 있제. 공 주라꼬 있나. 니 가서 당장 꼭갱이 가 온나.”

문민정부 시절 공직자 골프 금지령 사건의 시초였다.

#2.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의무화

YS가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나는 재임 중 단 한 푼도 받지 않겠다. 그런 의미에서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를 의무화 하겠다”고 천명한다.

청천벽력 같은 일갈을 들은 참석자들은 “아, 고생고생 해서 좋은 세상 왔나 했는데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고, 전통(전두환), 노통(노태우) 시절엔 지들이 처먹으면 밑에 떡고물만 주워 먹어도 한 밑천 잡는데 이 무슨 개소리야. 지가 뭔데 남의 주머니 속을 꺼내라 마라 하는 거야”하며 완강히 저항했다.

1988년 4월 부산 방문 중 버스 승객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
1988년 4월 부산 방문 중 버스 승객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

얼마 후 무리들이 격렬한 반발의 기세를 보이자 YS가 먼저 자신의 패를 깐다. “내 재산 홀박해서 17억 7822만 6070원이다. 대통령인 내가 깠으니까 흰소리 말고 니들도 전부 까.”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렸다.

이 후 재산이 공개 된 고위 공직자들을 보고 국민들은 깜짝 놀란다. “아니, 허구한 날 정치만 하는 놈들이, 검찰, 경찰, 판사들이 무슨 돈이 그렇게 많아. 월급이 도대체 얼마야.” 국민들의 날선 비판을 등에 업은 YS는 그때부터 개혁의 고삐를 더 움켜지기 시작했다.

#3. 동성이본(同姓異本) - YS의 인간적 감성

YS는 평소 미국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을 존경했는데 하루는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대사가 부임인사차 청와대로 접견을 왔는데 대사 이름이 피터 케네디였다. 케네디 대사가 신임장을 제출하자 YS 왈 “존 에프 케네디와 어떻게 되시오”라고 물었다.

예상치 못했던 첫 질문에 당황한 케네디 대사는 순간 머뭇거렸지만 곧 “제 이름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조상은 스코틀랜드 출신 장로교 집안이고,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 집안이라 이름은 같지만 가계가 다릅니다”라고 또박또박 설명했다.

1979년 10월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한 뒤 의사당에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
1979년 10월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한 뒤 의사당에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

통역을 맡은 당시 공보비서관이었던 박진 전 의원이 “이름은 같은 케네디인데, 동성이본(同姓異本)이라고 합니다”라고 통역했다. 그러자 김 대통령은 “우쨌든 케네디 아이가?” 하면서 대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고 한다.

영문을 몰라 하는 케네디 대사에게 “우리 대통령께서 대사님을 좋아하시나 봅니다”라고 하자 케네디 대사는 그제서야 환하게 웃었다. 그 이후로 청와대 녹지원의 외교단 가든파티 때 김 전 대통령은 케네디 대사에게 수시로 친근함을 표시하며 환담을 나눴다.

이름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지만 이 장면을 목격한 다른 나라 대사들이 케네디 대사를 아주 부러워했다고 한다.

#4. “어떻노, 놀랬제?”

YS가 당선 된 후 외신들은 “한국은 언제라도 쿠데타로 정치구도를 바꿀 강력한 군부(하나회)가 존재하고 있으며 누가 대통령이 되더러도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보도했다. YS 역시 내심 군부의 동향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취임 9일째 되던 날, YS가 권영해 국방장관을 불렸다.

“군인들은 짤릴 때 사표 쓰고 하나?”
“아닙니다. 각하 그냥 명령만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래 그라몬 지금 김진영 육참총장과 서완수 보안사령관(현 기무사령관)을 짜리고 김동진 연합 부사령관을 육참총장에 김도윤 보안사 참모장을 보안사령관에 앉치라.”

1987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광주에서 유세하는 김영상 당시 민주당 후보.
1987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광주에서 유세하는 김영상 당시 민주당 후보.

깜짝 놀란 권영해 국방장관이 “각하, 지금 당장 말입니까?”

“그래, 지금 당장. 일마들이 지들이 군 인사 다해 놓고… 뭐, 나보고 사인만 하라꼬. 이 기명사미를 우찌 보고. 나가 대통령이야.”

단 3시간에 만에 이루어진 숙청이었다. 김진영과 서완수는 군 권력을 쥐고 있는 하나회 핵심 멤버였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 별 40여 개가 추풍낙엽처럼 날아갔다.

오죽하면 새로 임명된 지휘관들에게 달아줄 별이 모자라 먼저 임명한 장군들의 별을 회수해 다음 장군에게 달아 줄 정도였다.

이를 두고 혹자는 YS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육참총장과 보안사령관을 날린 다음 국무회의 석상에서 YS 왈 “어떻노, 놀랬제?”

#5. 일급비밀

어느 날, 국빈 초청 청와대 만찬에서 홀로 나비넥타이를 매고 참석한 YS. 참석자들의 환대를 받으며 입장한 YS가 상석에 앉으며 조용히 김기수 수행비서관을 불러 심각한 얼굴로 귓속말로 이야기한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 선서하는 모습.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 선서하는 모습.

당시 YS는 모든 저명인사, 연예인을 제치고 대한민국 인물 인기 순위 1위였다. 그래서 참석한 기자들에게는 YS 일거수일투족이 취재 대상이었다.

만찬이 끝나고 기자들은 떼거리로 몰려 김기수 비서관을 찾아 “실장님, 아까 대통령께서 무슨 말을 하셨습니까”며 질문을 퍼 붙는다.

그러자 김기수 비서관 “일급비밀입니다.”

세월이 흐른 후 일급비밀을 공개했다.

“기수야, 떱다. 문 좀 열어라.”

-‘대한민국 민주화의 거목’ 거산(巨山) YS 서거 2주기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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